[고양신문] 혼자 살기 전에는 몰랐으나 혼자 살기 시작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 정기적으로 가스검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종종 가스검침을 하러 왔는데 부재중이어서 하지 못했다는 쪽지가 붙어 있곤 했다. 연락처도 남겨져 있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주 가끔은 쉬는 날 가스검침 노동자가 집에 찾아온 적도 있었다. 그 때는 ‘앗, 집이 엉망인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거나 ‘내가 지금 누군가를 맞이할 꼴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치곤 했다.

가스검침을 받기 시작한 지 7년, 긴 시간동안 나의 집을 방문한 가스검침 노동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가스검침을 받은 시간도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다양했다. 채 2분도 걸리지 않는 가스검침을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연락하여 방문할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것도 그녀들의 노동이었다. 혹여나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헛걸음을 여러 번 할 수밖에 없는 것 모두 그녀들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한 집이라도 가스검침을 못하게 된다면, 월급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지난 달, 울산지역 가스검침 노동자들의 파업소식이 들렸다. 파업의 계기는 성폭력이었다. 한 여성노동자가 가스검침을 하러 간 집에서 감금되고 추행을 당하려는 위기에서 탈출했지만,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자살시도까지 하는 데 이르렀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안전점검원의 성폭력 피해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난 데 없이 끌어안는다거나 나체인 채로 안전점검원을 맞이하고 숱한 성희롱 발언들을 견뎌야 했던 순간들이 고발되었다. 이후 여성노동자들은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눈물로 호소한 절규에 대한 응답은 여전히 없다.

혼자서 타인의 집에 들어가 일할 수밖에 없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고발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가스검침 노동자들의 소식이 알려진 뒤, 방문요양보호사 역시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시달린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여성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고용 등 고용관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불안정한 고용은 부당한 상황을 타개하기보다 참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폭력 역시 위험한 상황이므로 위급한 상황에 작업중지권이 주어져야 하며, 2인 1조를 이루어 일하는 것이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조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공공의 영역에만 맡겨두어선 안 된다. 누군가의 일터가 나의 집이 될 수밖에 없다면 모두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신지혜 노동당 대표

‘음담패설을 들으면 당황하지 않고 못 들은 척 담담하게 업무적으로 말을 돌린다.’ 이것은 A도시가스의 내부 매뉴얼이다. 무기력하게 피할 것만을 요구하는 매뉴얼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변화가 필요하다. 타인간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아무리 집이 자기 공간이라 하더라도 타인을 맞이하기 위한 예의를 갖추는 것은 타인에 대한 기본예의이다.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기 위한 환경도 함께 만들어갈 실천이 필요하다. 나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해서 관심을 끊지 말고, 나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에 대한 존중으로써 소비자의 범죄행위에 대해 함께 질타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것. 수많은 여성노동자가 절규에 함께 응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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