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 문헌학자 강연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지난 7일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강연중인 김시덕 박사
[고양신문] “우리의 역사관이 현재의 행동을 좌우합니다. 정확한 역사 인식이 필요합니다.”
지난 7일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회장 김경윤)에서 강연을 한 문헌학자 김시덕 박사는 역사 왜곡이나 부풀리기가 아닌 정확한 역사 인식을 통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국제사회에서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려대 일어일문학과를 거쳐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 자료관에서 전쟁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교수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고문헌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서 전쟁이 초래한 동아시아 차원의 변화와 역사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그림이 된 임진왜란』, 『서울선언』 등이 있다. 강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족보는 민주사회의 걸림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안의 족보는 임진왜란 후, 영조시대, 구한말에서 1920년대 사이에 세 번 정도 위조가 됐다. 그 결과 우리 모두 양반의 후손이 됐다. 전 세계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는 귀족제도를 무너뜨림으로서 모두가 평등해졌다. 그런데 한반도 경우는 족보를 대규모로 위조해서 모두가 양반이 돼서 평등해졌다. 조선시대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는데, 노비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처럼 없던 과거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독특한 방식이 세계적으로도 관심거리다.

족보를 중요시하는 현상에 대해 국사학자 이기백은 “족보는 민주사회의 걸림돌”이라고 했다. 역사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 족보는 끊임없이 위조가 일어났으므로 없어져야 한다. 일본과 중국이 역사 왜곡을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도 역사 왜곡과 역사 부풀림을 많이 하고 있다. 족보 왜곡도 역사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을 비교해보면서 어느 부분이 부풀려졌고, 어떤 부분은 믿을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역사학과 문헌학의 일이다.
 

조선의 금속활자는 지식 독점용

조선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100년 앞서고 세계적으로 위대하다고 말하는데, 둘은 질적으로 다르다. 구텐베르크 활자는 철로 활자를 만들어서 수 천 장을 찍어도 흔들리거나 망가지지 않고 찍어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조선의 금속활자는 납으로 만들어 밀납으로 고정시켰기 때문에 흔들리고 속도가 나지 않았다. 조선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10% 정도였고, 가격이 비싸 양반만 볼 수 있었다. 조선 정부는 지식이 퍼지는 것을 싫어했다. 조선의 금속활자는 지식 독점용이었다.
 

조선은 '주변부'였던 덕분에 살아남았다

조선이 500년 동안 유지된 것은 우수한 민족성, 인자한 성군들의 정치 때문이 아니다. 임진왜란 이전의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대륙의 패권싸움에서 요충지가 아닌 주변부였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버마나 인도네시아 쪽을 보면 500년 이상 된 왕조들이 많다. 이들도 지정학적인 요충지가 아니어서 살아남은 민족들이다.
 

국제사회에서 함께 책임을 져야

이제 우리나라는 힘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평범한 나라들 중 하나가 됐다. 남북한은 UN에 각각 가입한 개별 국가다. 우리만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아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처럼 분단국가가 많다. 굳이 남과 북은 특별하다고 말하지 말라. 로힝야, 멕시코,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경우를 보라. 한국은 이제 세계 지도에서 중요한 나라에 속한다. 남북한의 특수관계를 고려해서 봐 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국제사회에서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탄소 분담금도 많이 내고, 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도 많이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연 후 싸인 중인 김시덕 박사

 

김시덕 박사(앞줄 가운데)와 참석자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