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입법예고, 의견수렴 없어. 내용도 정부 표준조례안 수준 못미쳐

[고양신문] 민선 7기 고양시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주민자치회’ 확대를 위한 조례 재개정안이 제대로 된 논의 과정 없이 당초 취지에 비해 턱없이 못 미치는 내용을 담은 채 상정돼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자치분권을 시정목표로 내건 고양시가 정작 주민자치에 대해서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4일 고양시 등에 따르면 주민자치회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고양시 주민자치회 설치·운영 및 시범실시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발의돼 의회에 상정됐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2개 동(창릉동·풍산동)으로 한정되어 있는 주민자치회를 추가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설치 조항을 개정하고 주민총회 및 자치계획에 대한 내용을 신설하는 안이다. 해당 개정안은 오는 17일부터 진행되는 시의회 정례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주민자치회 확대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 중 하나로 기존 주민자치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대표성을 강화하는 한편 자치권한 확대 등 실질적 시정참여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재준 시장 또한 작년 선거 당시 ‘시민과 함께 만드는 자치도시’를 표방하며 주요내용으로 ‘주민자치회 확대 및 자치권한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주민자치 실질적 강화를 위한 주민자치회 전환이라는 애초 취지를 무색케 할 정도로 주민자치회 위상 및 주민 참여 확대, 행정 역할 관점에서 정부안에 비해 부족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에서 올해 1월 발표한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에 관한 표준조례안과 고양시 조례개정안을 비교해보면 이러한 점들이 명확히 드러난다. 행안부 표준조례안에 따르면 주민자치회 구성원을 최대 50명까지 규정하고 주민자치교육과정 이수자에 한해 공개추첨으로 선정하도록 해 구성원의 대표성과 개방성을 확대하도록 했지만 고양시 조례개정안에는 이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위원구성의 측면에서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가 사실상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시민참여 방안, 주민자치회의 위상 강화, 사무국 설치 및 행정·재정적 지원, 행정 사무위탁 등 다방면의 권한 부여와 같은 행안부 표준안의 핵심 내용들이 고양시 개정안에는 모두 빠져있었다. 

다행히 이번 고양시 개정안에 주민총회, 자치계획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긴 했지만 이조차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민총회의 경우 행안부 표준안에 명시된 동 행정사무에 대한 의견 제시, 동 공무원 주민총회 참석요구 등이 빠져있었으며 자치계획 또한 행안부 표준안에 나와있는 동 행정사무 수탁 및 추진계획, 주민자치센터 운영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 역시 고양시 개정안에는 모두 빠져있었다. 

한 주민자치위원은 “이번 개정안은 행안부 표준안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자치도시를 추진한 고양시의 위상을 크게 깎아내리는 내용”이라며 “권한은 넘겨주지 않고 행정지원도 대부분 빠진 지극히 행정 편의적인 내용 아니냐”고 반발했다. 

절차상의 문제도 제기됐다. 주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공론화 과정이 거의 없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주민자치회 전환을 위해서는 사전 교육과 주민 조직화, 행정지원 강화 등 사전 준비에 관한 종합적인 계획과 주민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함에도 아무런 준비 없이 조례개정부터 추진하는 것은 당초 취지에 위배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담당부서인 주민자치과 관계자는 “행안부 표준안에 맞춰 전면 개정하는 것이 원칙상 맞긴 하지만 아직까지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 상황인데다가 당장 올해 하반기에 주민자치회를 확대 실시해야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 우선 급하다고 판단되는 내용만 개정안에 담게 됐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해당 관계자는 “이번 조례개정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행안부 표준안과 운영방침에 맞춰 주민자치회 전환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과 같은 주먹구구식의 개정안이 아닌 제대로 된 주민자치회 전환계획과 주민의견이 수렴된 안으로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양시 자치도시 계획에 관여해온 한 인사는 “이번 개정안은 폐기하고 사전 계획 수립과 준비 후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쳐 개정안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며 “조례개정에 앞서 주민자치회 전환계획을 수립하고 추진지원단 등 사전준비를 거쳐 주민들의 폭넓은 논의 속에서 조례개정 및 시행절차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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