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농사짓는 이들에게 풍작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올해에는 양파농사가 대풍이다. 작년에 심었던 양파모종이 냉해피해 없이 겨울을 잘 났고, 흡족히 내린 봄비 덕분에 양파들이 굵직굵직 잘 자랐다. 덕분에 양파와 마늘공동체 회원들은 주먹만한 양파들을 그물망에 쓸어 담으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했고, 나 역시도 사십 킬로그램이 넘는 양파를 베란다에 널어 말리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했다. 다음 주에 수확할 마늘 역시 잘 자라고 있어서 공동체 회원들 모두 한껏 들떠있다.

그러나 자급밥상을 위해 조그만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부들과 달리 농사를 업으로 삼은 전업농부들에게 풍작은 비극인 것만 같다. 동네의 마트와 채소가게 앞에 쌓아놓은 양파와 마늘을 보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소비자들 입장에서야 채소가격이 싸면 쌀수록 좋겠지만 생산농민 입장을 생각하면 이건 뭐 거의 강탈수준이다. 이정도 시세라면 양파와 마늘을 수확하느니 차라리 밭을 통재로 갈아엎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양파농사를 천 평 지어서 십 톤의 양파를 수확했다고 가정해보자. 마트에서 파는 양파 이십 킬로그램 가격이 만오천 원이니까 현지 농민이 도매상에게 만 원에 넘겼다고 계산한다면 총 매출은 오백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노릇이다. 천 평 밭에 양파를 심기 위해서는 일단 퇴비 삼백 포와 양파모종 오백 판이 필요하다. 여기에 경운비용과 보온용 비닐터널 재료비까지 합치면 대략 이백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그리고 천 평 밭에 양파를 심기 위해서는 열 명의 일손을 사야한다. 겨울 지나 봄이 되면 또다시 일손을 사서 터널을 걷어내고, 김을 매고, 웃거름을 줘야 하고, 가물면 몇 날 며칠 물도 대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지가 되면 또 일손을 사서 수확을 해야 한다. 그 외에도 사람을 부를 때마다 매끼니 밥을 사야하고 새참을 대야 한다. 그러니 오백만 원 매출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른 농작물들도 사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농민들은 흉작에도 울고 풍작에도 울면서 빚을 늘려나간다. 도대체 이런 악순환은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나서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농촌이 완전히 붕괴된다면 우리의 삶은 근본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농부가 공무원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해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럴까. 관점을 조금만 바꿔서 바라보면 농업은 국가를 유지하기위한 핵심 산업이다. 농민이 없는 사회를 상상해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농민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말 그대로 국가 또는 지방 자치 단체의 업무를 담당하고 집행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거창하게 볼 것도 없이 주민센터 직원이나 우체부, 소방관, 청소부 모두 공무원이다. 파출소에서 대민봉사를 하고, 발전소에서 일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고, 공원을 관리하는 것도 공무원이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농사짓는 일은 그보다 가치가 없거나 덜 중요한 일일까.

만약 농민들이 공무원이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우선 실업자가 사라질 것이다. 노인문제도 상당부분 해결하고, 젊은이들이 농촌마을에 모여 살고, 식량대란도 걱정할 필요 없고, 맘 편히 아이도 낳고, 국민들은 누구나 국가가 제공하는 유기농산물로 밥상을 차리고……

실현가능한 상상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꿈꾸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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