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훈 1주기 추모의 밤

문학과지성사 주최, 중단편선 『달과 소년병』 출간
박정자 작품낭독, 김병익·김호기 추모사
다음달 ‘고양 최인훈 기념도서관 건립 토론회’ 개최 예정

 


[고양신문] 1년 전 우리 곁을 떠난 故 최인훈 작가(1936~2018)를 추모하는 자리가 23일 저녁 서울 마포구 동교동 다리소극장에서 열렸다. 대표작 『광장』을 비롯해 수많은 소설과 희곡작품을 남긴 최인훈 작가는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서 만년을 보내다 지난해 7월 23일 타계했다.

‘작가 최인훈 1주기 추모의 밤’은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가 작가의 소설 ‘주석의 소리’ 중 한 대목을 낭독하며 시작됐다. 박정자 배우는 1970년 최인훈 작가의 희곡작품을 무대에 올린 연극에서 주연을 맡으며 고인과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최인훈 작가의 작품을 낭송하는 박정자 배우.


이어 ‘최인훈 전집’을 발행한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가 추모의 자리를 찾아 준 이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그는 “최인훈의 작품들은 한 출판사의 자산을 넘어 한국 문학과 정신의 진원지”라며 “어떻게 하면 최인훈 문학작품을 독자들 곁에 살아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모의 밤을 준비한 문학과지성사는 이날 새롭게 엮은 최인훈 중단편선 『달과 소년병』의 발간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추모사는 김병익 문학평론가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역임했던 김병익 평론가는 “최인훈의 애독자이자 편집자이자 동료 교수로서 그의 끊임없는 문학적, 지적 탐구 과정을 지켜보았다”면서 “자유로운 사유와 냉철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소설의 본질을 추구하며 우리 문학사의 가장 풍요로운 창작정신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최인훈 작가는 일체의 사회적 행동을 사양하는 대신 거대한 인식적 참여를 수행했다. 앞으로 이처럼 철저한 지식인 작가, 글쓰기만으로 한 생애를 보내는 정갈한 삶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를 서러워한다”면서 깊은 그리움의 마음을 전했다.
 

추모사를 하는 김병익 문학평론가.

김호기 교수는 같은 날 경향신문에 게재한 ‘최인훈을 기억하며’라는 칼럼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소설 『화두』의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며 “조부모의 기억이 부모의 기억을 통해 아이들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게 개인의 역사이지 않을까”라며 “선생은 내게 ‘기억의 힘’을 가르쳐줬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작가 최인훈의 문학 세계는 광복 이후 절망과 희망, 고뇌와 영광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성을 이해하는 좁은 문”이라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며 추모사를 마무리했다.

추모사에 이어 최인훈 작가의 며느리 하윤나씨가 촬영·편집한 다큐멘터리 추모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을 통해 남정현 작가, 임헌영·염무웅·김주연·김병익 평론가 등 최인훈 작가와 동시대를 살며 교유했던 이들의 회고담이 이어졌다. 뒷부분에는 작고하기 얼마 전인 지난해 4월과 6월에 촬영한, 고인의 생전 모습과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긴 영상이 등장해 행사장을 숙연케 했다. 영상 속에서 최 작가는 “묘한 나라에서 태어나 묘한 시대를 살면서도 용케도 자기 생활을 사랑하며 썼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피난 왔지만 남쪽에 원래 있던 작가들보다도 참 행복한 작가생활을 했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추모 영상 속 최인훈 작가의 모습.


마지막으로 최인훈 작가의 아들 최윤구씨가 유족을 대표해 인사를 했다. 그는 돌아가시기 전 병실에서의 모습을 회고하며 “시대의 서기를 자임했던 나의 아버지는 늘 아프셨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면서 “민족 전체가 아파하던 시기를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글로 형상화하시려고 스스로 늘 아프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고인과의 행복했던 시간을 회고한 최윤구씨는 “아름다움을 남보다 더 누린 사람은 반드시 그 갚음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지킬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추모의 밤 사회를 맡은 최하연 시인은 “최인훈 문학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에 놓인 텍스트”라며 “그의 작품을 새로 읽을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있어 추모의 발길이 무겁지만은 않은 듯하다”는 말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최인훈 작가가 월남 후 가장 긴 시간을 살았던 고양시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을 통해 ‘고양 최인훈 기념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추지위 관계자는 “기념도서관 건립을 위한 토론회를 8월 중 개최할 계획”이라며 “크고 따뜻했던 이웃 최인훈 작가를 단순히 기념하는 것을 넘어, 그의 작품을 새롭게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시민들의 ‘광장’을 함께 만들어가기를 꿈꾼다”며 기념도서관 건립의 의의를 밝혔다.
 

최인훈 작가의 작품을 낭송하는 박정자 배우.

 

행사를 주최한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가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최인훈 작가의 약력을 보고한 제자 이나미 소설가.

 

추모사를 하는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추모영상에서 남정현 소설가가 최인훈 작가를 회고하고 있다.

 

유족 인사를 전하는 최인훈 작가의 아들 최윤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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