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종의 전쟁>(2017, 미국)

2017년에 발표된 시리즈 완결편 <혹성탈출: 종의 전쟁>.

[고양신문] “Apes! Together! Strong!”(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 
영화 <혹성탈출>의 주인공 시저가 유인원을 통솔하며 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할 때 외치는 유인원들의 구호이다. 짧지만 그들의 핵심 사상이 녹아 들어가 있다. 1969년도에 한국에서 개봉해 많은 사람에게 반전의 충격을 안겨줬던 영화 <혹성탈출>이 2011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성공적인 리부트를 시작했고 2014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 이어 2017년 <혹성탈출: 종의 전쟁>으로 대단원의 마무리를 지었다. 새롭게 시작된 리메이크 시리즈는 트릴리지가 완성되기까지 첫 시리즈에 못지않은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리즈 리부트를 시작한 2011년작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새로운 <혹성탈출> 트릴리지에서는 인간처럼 진화한 유인원이 등장한다.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놀랄 정도로 발전하는 유인원과 결국 ‘시미안 플루’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점차 퇴화하는 인간의 모습은 인간이 근원적으로 두려워하는 것들을 대비적으로 잘 보여준다. 인류의 멸망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유인원과 대치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을지를 보는 것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리메이크 시리즈의 마지막인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제목에서부터 인간과 유인원이라는 서로 다른 종이 전쟁을 통해 죽고 죽이는 액션 영화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액션에 대한 큰 기대를 가졌던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적잖은 실망을 하기도 했다. 이유는 본 영화가 액션보다는 기존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유인원들의 구원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유인원은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답게 거의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진화를 한 상태다. 첫 영화부터 줄곧 유인원의 리더였던 시저는 시종일관 인간과 공존하며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일가족이 살해를 당하는 시련을 겪는다. 평화주의자였던 시저가 인간을 향한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평정심을 잃은 리더로 인해 유인원 무리 전체도 위기 국면에 빠진다. 이제 관객 앞에는 멸종 위기에 놓인 인간으로서 유인원을 처단해야 한다고 믿는 ‘퇴화하는’ 인간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상황에서 생존의 자유와 자신의 터전만은 지키기 위해 싸우는 진화한 유인원이 놓여있다. 시리즈를 보는 내내 교만하고 전쟁을 즐기며 자기 중심적인 인간보다는 평화적이고 이타적일 줄 아는 유인원에 더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특히 유인원 리더 시저가 일가족의 살해라는 극단의 상황에 부닥치자 이분법적 선과 악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공감하게 된다.

그때 영화는 새로운 캐릭터를 관객에게 소개해 준다. 노바(NOVA)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이다. 라틴어 단어로 새로운(new) 이라는 뜻을 지닌 그녀는 바이러스에 걸려 ‘퇴화’의 징후로 말은 못 하지만 인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소녀이다. 그녀는 극 중 유인원에 의해 입양이 되고 유인원의 가족이 된다. 외형은 인간인데 유인원 일부로 살아간다. 인간 군대의 리더를 맡은 대령(그는 영화에서 이름도 받지 못한 체 그저 대령이라는 직책으로만 존재한다.)에게 유인원은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는 더더욱 없다. 외모뿐만 아니라 아무리 유인원이 인간처럼 진화한다고 할지라도 유인원은 유인원인 것이다. 그는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는 존재적으로 절대 넘어올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령은 항상 유인원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대령은 유인원과 공존할 수 없다. 퇴화하는 인간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인원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인간 소녀 노바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 그것은 과거 인간과 유인원이 싸우면서 주고받던 다툼의 언어가 아니다. 노바가 습득하는 언어는 비록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유인원의 가족이 되는 언어였고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언어였다. 그렇게 인간과 유인원이 새롭게 가족으로 환골탈태하며 새로운 종의 탄생을 말한다.

인간은 언제나 역전의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신을 절대자의 위치에 상정해놓고 그 어떤 존재도 그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지켰던 것은, 인간을 신 다음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욕망이 깊게 숨어있다. 절대로 역전 불가능한 신의 영역을 만들어 놓고 백인은 자신을 신의 위치에 가져다 놓는다. 다른 인종으로부터의 역전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그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역전 현상에 대한 두려움은 인종 간 차이를 뛰어넘는다. 우리가 규정하는 정상(normal/sane)의 범주와 비정상(abnormal/insane)의 범주 역시 두려움의 범주이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역전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인간은 항상 폭력으로 다스려왔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역전 현상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듯하다. 남자를 정상범주에 놓고 여자를 그 반대편에 놓는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는데 세일럼에서 집단적으로 시작한 마녀사냥에서 우리는 크게 나아가지 못한 듯 보이기도 한다. 미투현상으로 남자들이 관행적으로 이어오던 작태가 고발돼 대중의 공분을 사기도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위치가 남성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여지없이 구조적이고도 폭력적인 자리싸움이 시작된다.

강도영 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영화 말미에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유인원을 인도해온 시저와 그 무리들이 큰 호수가 보이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착한다. 그들은 이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고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리더 시저는 이 과정 속에서 큰 부상을 입고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며 마치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입성할 수 없었던 모세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비록 더 이상 그들의 리더 시저는 없지만 그가 남긴 말은 그들과 영원히 함께 남는다. “Apes, Together, Strong”

이제는 유인원만 뭉쳐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언어를 배우며 공존의 존재 방식을 터득한 노바(NOVA)들이 함께 뭉쳐있을 때 그들은 강해진다는 새로운 의미가 그들에게 더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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