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그레타 툰베리라는 16살짜리 스웨덴 청소년이 있다. 이 학생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에서 내놓은 보고서를 읽고, 기후변화가 맞이할 파국을 막기 위해 학교파업을 했다. 그는 학교를 가는 대신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유는 이대로라면 10년이 조금 지나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올라갈 것이고, 그 티핑 포인트를 지나면 생태계의 파괴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이 거대한 위협에 놓일 것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앎은 그를 평범한 학생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사로 변신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레타 툰베리의 용기있는 행동에 전 세계의 청소년과 시민, 정치인과 환경운동가들이 함께 했다.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에 프랑스 하원에서 기후위기에 관한 연설을 했고,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도 참석하여 연설을 했다. 그는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대신 태양열로 움직이는 보트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다. 그의 운동은 유럽의 정치지형을 변화시켰는데, 유럽에서의 녹색당의 약진은 그의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와, 이게 가능할까? 정말 당찬 학생이군. 그런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는 얼마나 좋을까? 미래의 지도자로 손색이 없는데! 어렸을 때부터 정치의식을 갖춘 교육이 필요하겠군. 뭐 이런 생각을 하시는가? 그런데 그는 대학은 갈 생각이 없나 봐?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히지나 않을까? 성적관리는 어떻게 하나? 그러한 활동이 스펙으로 유용할 수도 있을까? 조만간 학교를 그만 두겠군. 뭐 이런 염려를 하시는가?

대한민국에는 그레타 툰베리 같은 용기있는 학생이 있을까? 왜 없겠는가? 대한민국에도 수많은 그레타 툰베리가 있다. 단지 그들은 입시에 영향을 끼치는 학교파업 따위는 상상하지도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열린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참석한 학생들은 학교파업 대신 체험학습이란 이름으로 참석했다. 만약에 이들이 학교파업을 하고 거리로 나섰다간 무단결근이나 조퇴로 낙인찍혀 심문당하고 손해당하고 위축되었을 것이다. 학생 시절의 정의로운 정신은 좋지만,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행동하라는 입바른 충고를 받았을 것이다. 지혜롭게 행동해야지 극단적인 행동을 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동료 학생들은 동조 파업 대신 걱정어린 눈으로 참가학생을 바라봤을 것이고, 담임은 혹시나 자신에게 해가 돌아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사건을 축소하거나 무마시키려 하거나 심하게는 징계를 생각했을 것이다.

앎을 삶으로 전환하려는 학생의 용기 있는 행동들이 가장 먼저 좌절되는 곳은 바로 학교다. 학교는 정의를 실천하는 곳이 아니라 정의란 무엇인지 5지 선다로 고르는 곳이며, 정답을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오답을 회피하는 곳이다. 순응과 규율의 테두리 속에 갇힌 채, 시험지 안에서만 올바름을 찾아야 하는 곳.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정신이 한 번도 확인되어 본 적이 없는 곳. 그저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허용되는 자치활동에 만족하라고 말하는 곳. 학교 밖으로는 뛰쳐나가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된 곳. 그곳이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이다.

수많은 그레타 툰베리가 좌절하고, 질식당하며, 정의가 지연되고, 행동이 금지되는 곳. 강제학습은 있되 자율적 결정과 행동은 수많은 규칙과 제도로 가로막고 있는 곳. 다른 나라의 그레타 툰베리를 부러워하며 가르치되, 여기에서 그레타 툰베리로 살아갈 수는 없는 곳이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교사여, 학생이여, 학교를 파업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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