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태원

이태원 박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양신문] 언제였던가. 한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포럼의 패널토론에 참석하고자 출근 직후 사무실을 나섰다. 장소가 서울 시내 한복판이기도 하고, 이전에 다른 출장업무도 있어 아예 차를 두고 직장 동료의 차에 몸을 실었다. 1시간 남짓 지나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휴대폰을 사무실에 두고 왔음을 알았다. 순간 허전한 마음과 함께 하루를 어찌 지내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몰려왔다. 일단 급한 대로 동료에게 오늘 내게 휴대폰이 없음을 알려 달라 부탁한 후 대중교통을 이용해 포럼장소로 향했다.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도구는 아무 것도 없이..

한동안은 휴대폰 생각을 잊었다. 당초 우려와 달리 오히려 맘이 편했다. 다만, 포럼 시작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시간을 확인할 수단이 없는 게 불편한 정도였을까. 또 시간 내 도착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려는 주최 측의 연락이 있으리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일을 모두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할 즈음, 휴대폰 상태가 궁금해졌다. 수십 통의 전화, 이백여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는데 대부분 일상적인 것들이어서, 결국 잠깐 동안의 휴대폰과 이별에 따른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본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각종 소식도 접하며, 교통편이 언제 도착하는지 등 유익한 정보도 얻기도 한다. 오죽하면 길을 걸으면서도 그걸 들여다보니 휴대폰에 신호등을 보여줄 생각을 하겠는가. 일본에서는 인터넷에 빠져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가 사회문제로 된 지 오래다. 문득, 가끔 이용하는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나의 스마트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스마트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

스마트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똑똑하다, 영리하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이 쓰고 있는 디지털이나 자동화 장치도 똑똑하고 영리한 건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척척 해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스마트하다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요즘 흔히 쓰는 스마트라는 말은 수요자 맞춤형이 전제가 된다. 획일적인 게 아니라 상황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능력으로 그 차이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과거 소위 2세대 통신시대에 쓰던 아날로그 폰과 스마트 폰이 비교될 수 있다. 아날로그 폰을 쓰는 소비자는 제조사가 기기에 저장해준 단조로운 기능만을 써야 했던데 반해, 스마트 폰을 이용하면 소비자는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기기의 제조사와 관계없이 누가 만든 어플리케이션이든 쓰는 게 가능하다. 언제, 어디서나 각자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도 있다.

수화물 추적과 자동 무게측정, 스마트 폰으로 여닫기, 주인을 따르는 기능 등 주도적인 기능으로 크게 각광받았던 스마트 캐리어 스타트업이 있었다. 하지만 전도유망하던 이 회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항공기 기내 반입금지 정책으로 한순간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반면, 소비자의 요구를 친절히 반영한 경쟁사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스마트 비즈니스의 불확실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효율과 경제성만을 추구하던 구시대 패러다임의 옷을 입은 비즈니스가 미래의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요즘의 소비자는 생각보다 영리하고 똑똑하기 때문이다.

너무 기술적 관점에만 집착하는 것도 경계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물인터넷과 빅테이터다. 장치의 설치를 통해 많은 정보를 모아야 한다는 취지로, 산업사회 관점의 산물이다. 단순히 단말장치와 정보처리용량, 그리고 통신량 등 물리적인 양만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소비자의 요구를 먼저 살피고 그때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게 순서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얻은 정보를 공유해 의외의 결과를 만드는 게 빅데이터의 또 다른 임무다. 정보의 보안과 아울러,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생산되는 정보의 사용을 위한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도 간과돼서는 안된다.

최근, 인공지능 등 기술발전이 가져다 줄 미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건 물론 더 똑똑해진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공급자 관점의 디지털이 지나치게 주입된 것으로, 아날로그에 기초한 인간의 생각과 생활을 무조건 디지털화한다는 오판의 결과다. 하지만 똑똑하고 영리한 소비자가 그걸 허락할 가능성은 없다. 인문과 가치를 중요시하는 스마트한 인간은 기술의 진화가 가져다주는 디지털에 다시 아날로그 옷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수단을 소비자가 가질 수 있게 하는 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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