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이웃 이종철 ‘까대기’ 만화작가 

까대기 일하며 만난 사람들이 
좋았다. 직접 말하긴 쑥스럽고… 
그러니 만화로라도 당신들이 
정말 좋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까대기’란 화물차에서 물건을 실어내리는 활동을 지칭하는 은어다. 택배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등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올리는 행위를 통칭한다. 택배노동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택배기사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주문한 상품이 택배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보이지 않는 까대기 노동자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올해 5월 택배노동 이야기를 다룬 ‘까대기’라는 제목이 만화책이 출간됐다. 독특한 주제와 리얼리즘 기법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모은 이 만화는 올해 19회 만화의 날 행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도 수상했다. ‘까대기’를 그린 이종철 작가<사진>는 작년 8월에 화정동으로 이사온 고양의 이웃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고양시자치공동체지원센터 홈페이지에 행신동 느티나무 공동체 이야기를 주제로 한 공동체 웹툰도 연재해 큰 화제가 됐다. 

택배만화도 공동체웹툰도 사람이야기가 좋아 시작했다는 이종철 작가. 동네에서는 ‘빠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18일 화정동에 위치한 작업실을 찾았다. 이종철 작가가 그린 ‘까대기’는 택배노동을 주제로 하고 있다. 6년 동안 직접 체험했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택배노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택배노동을 주제로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이 주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서울에 상경한 뒤 생계를 위해 택배알바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잠깐 하려고 했던 일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처음 택배 이야기를 만화로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알바를 한 지 1년이 넘은 시점부터였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건 작년 부천만화영상진흥원에 지원사업을 받으면서부터다. 택배알바를 하면서 틈틈이 스마트폰에 일기를 작성해 놓았던 것이 280페이지 분량의 단행본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만화작업과 택배노동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선택지가 없었다. 까대기를 원래 오래할 생각을 못했는데 나중에 원고작업을 할때 세어보니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더라. 개인적으로 만화라는 작업을 마라톤과 같다고 생각한다. 단행본을 내는 과정에서 어린이잡지 연재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했는데 택배 하차 알바의 경우 오전시간만 일하고 오후에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페이스 조절이 가능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담담하게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원고작업을 하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은 징징대지 말자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사회에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살지 않나. 나만 유독 힘들게 살았다고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다. 택배노동현장도 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열악한 점도 많지만 그만큼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최초 콘티작업에는 주인공이 힘들 때 울컥하는 장면들을 넣긴 했지만 작업과정에서 삭제하거나 시선을 외면한다는 식으로 바꿔서 담담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독자분들이 그런 부분이 좋았다는 의견을 많이 내줘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 전반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묻어나는 것 같다. 
택배노동을 주제로 정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는 점이었다. 같이 일했던 까대기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입차 기사분들도 그랬고 지점장 중에서도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분들이 있다. 저는 사람이 좋으면 만화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직접 말하긴 쑥스럽고 그러니 만화로라도 당신들이 정말 좋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단행본이 나오고 나서도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홍보도 많이 해주고 좋아해줘서 고마웠다. 

만화를 통해 택배노동의 구조적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원래 사회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몸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경험했던 것들, 가령 같이 일하는 동료가 다쳤는데 회사에서 아무런 조치를 안해준다든지 택배기사님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모습을 몇번 보면서 ‘이게 대체 뭘까’라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나중에 원고작업을 하면서 택배기사 등을 직접 인터뷰하고 자료조사도 해가며 구조적 문제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경험했던 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는 점도 깨닫게 됐다. 

경북 포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가를 꿈꿨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건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상경한 뒤였다. 2012년, 그가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다. 

만화가 꿈은 언제부터 가졌나.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 반에 전학생이 왔는데 드래곤볼 만화를 잘 그려서 멋있다고 따라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만화를 좋아하게 됐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부모님 도움으로 입시미술학원도 다녔고 대학진학도 서양화 전공을 선택하면서 이쪽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만화가로서 재능이 있는지 확신은 없었다. 혼자 만화는 그려봤지만 대중들에게 평가받은 적도 없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스무살 후반까지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만화가로서 확신하게 된 것은 이 ‘까대기’ 만화가 처음인 것 같다.

웹툰이 아닌 단행본 만화를 그린 계기가 궁금하다.
까대기 이전에 어린이만화 ‘바다아이 창대’를 3년간 연재하면서 원고형식의 만화작업이 익숙했다. 웹툰의 경우 기본적으로 드라마 형식이다. 만약 ‘까대기’를 웹툰연재했다면 아마 매편마다 주인공의 사랑같은 잔가지를 많이 넣어야 했고 매편마다 임팩트 있는 장면을 넣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다음 화를 기다릴 테니. 그러다보면 의도치않게 분량이 늘어날 수 있고 스케줄도 빡빡해지고 무엇보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택배이야기가 웹툰형식에 맞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다양성만화 지원사업 덕에 웹툰형식이 아닌 원고형식의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면서 군더더기 없이 택배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포항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금전적 어려움이 제일 컸다. 압박과 스트레스도 많았고. 선배집에 함께 지내면서 월세를 나눠내야 하고 학자금대출도 내야하고 생활비도 많이 나갔다. 택배알바만으로는 감당이 안되서 통장잔고는 점점 마이너스가 되고… 돈이 없으니까 사람도 잘 안 만나게 되더라. 그나마 고향친구들이 잘 챙겨줘서 고마웠다. 이번에 단행본이 나오고 나서 다 같이 집에 모여서 축하파티도 했다. 

6년 동안 까대기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던 이종철 작가는 작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하는 ‘2018 다양성만화제작지원’ 선정작이 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만화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고양시로 이사 온 시기도 그 즈음이었다.    

고양시에 이사오게 된 계기는.
은평구에서 선배와 살던 집이 재개발로 철거될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은평이나 서대문 근처로 알아봤더니 월세가 너무 비싸서 부담이 컸다. 그러던 중 만화책을 내는 데 도움을 주던 친구가 행신에 살았는데 한번 만나자고 해서 작년 7월쯤에 처음 화정이라는 곳을 알게 됐다. 친구를 만난김에 부동산에도 한번 들러봤는데 화정도서관도 근처에 있고 가격도 적당해서 이곳에 자리잡게 됐다. 만화가라는 직업이 혼자 고민하고 작업하다보니 외로운 점이 많은데 도서관을 가면 좋은 기운도 많이 받고 여러모로 좋은 것 같다. 

고양시자치공동체지원센터(https://www.goyang.center/goyang/)에서 연재중인 공동체웹툰 '동네를 굴려라'의 한 장면.

느티나무도서관 공동체 만화를 봤다. 연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전에 알고 지내던 자치공동체센터 ‘깨굴’팀장이 먼저 제안했다. 느티나무 도서관 공동체의 역사와 에피소드를 소재로 만화를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제가 그곳을 잘 모르니 시냇가(관장)를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더라. 그분이 느티나무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주고 그걸 바탕으로 만화를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시작했다.
 
제안이 오긴 했지만 선뜻 수락하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 제안 받은 날 그분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까대기 만화처럼 평소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공동체를 소개하는 만화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였기 때문에 호감이 갔다. 나중에 시냇가가 보내준 원고 내용도 마음에 들었고 내 성향과도 맞아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느티나무 공동체와 인연을 맺은 것도 색다른 경험일 것 같다. 
그전까진 도시 안에서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구성원들을 모두 별명으로 부른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다. 동네 아이들이 별명이 뭐냐고 물어보기에 뭘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힘내자는 의미로 ‘빠샤’라고 지었다. 

대안학교 강의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함께 조기축구하시던 분의 소개로 고양시 대안학교인 불이학교에서 작년 2학기부터 만화수업을 하고 있다. 기초적인 일러스트 작업을 가르쳐 주긴 하지만 최대한 아이들이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 만화나 일러스트를 그리는 방식이 다들 제각각이다. 그래서 각자의 방식에 맞춰서 더 나은 그림이 되도록 도와주곤 한다.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너희가 어떤 이야기를 담아도 좋으니 완결성을 갖춘 만화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혹시 준비하는 작품은 있는지.
내년이 전태일 열사 50주년인데 출판사에서 제안이 와서 관련 만화를 준비 중이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20살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경험도 있어서 꼭 해보고 싶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지금 사는 청년과 전태일 열사가 청년시절에 목격했던 노동이야기를 같이 엮어내는 방식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다들 노동을 하면서 힘든 하루를 살아가는데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입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고양시민이 된 지 아직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도서관도 많고 공원도 많은 것 같아서 생활하기 참 좋은 것 같다. 기회만 생긴다면 지역사회와 자주 함께하고 싶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