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현성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

1999년 창단한 고양시 유일 민간교향악단
지난해 상주단체 공모 탈락하며 존립 위기
지역 밀착형 오케스트라, 이대로 사라져야 하나

[고양신문] 지난해 전국공모를 통해 고양문화재단 상주단체로 선정돼 ‘고양시교향악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뉴서울오케스트라의 계약기간이 12월로 종료된다. 고양시는 내년도 교향악단 운영계획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와 같이 전국공모를 진행하는 방안, 공모 없이 상주단체를 지정하는 방안, 또는 상주단체 지정을 하지 않고 KBS교향악단과 같은 유명 교향악단의 초청 공연을 확대하는 방안 중 하나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20년 동안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사립교향악단인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단장 김영수, 이하 고양필)가 해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양시 상주단체 선정을 누구보다도 갈망하고 있을 고양필이 해체를 고민하는 이유는 뭘까. 안현성 음악감독(상임지휘자)을 만나 고양필이 처한 현실과 바람에 대한 솔직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안현성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고양필이 처한 현재 상황은.
20년을 지속해 온 고양필이 존립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처했다. 고양시의 적극적 지원이 내년도에도 실현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오케스트라를 지속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고 싶다.

▶고양필의 이력을 간단히 들려 달라.
클래식 문화예술 저변이 척박했던 1999년, 경기 북부 최초의 순수민간오케스트라로 출발했다. 처음부터 고양시를 중심으로, 고양시민들과 밀착된 교향악단으로 성장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름도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로 지었다. 그동안 40여 회의 정기공연을 통해 정통 클래식 교향곡을 선사하며 클래식 팬들의 지지를 쌓아왔다. 지난해와 올해는 예술의전당에서 정기공연을 펼치며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또한 뮤지컬, 영화음악 등 대중적 레퍼토리로 해마다 20여 회의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며 시민들의 일상에 예술의 향기를 전해왔다. 전국 곳곳의 무대에 초청돼 고양시를 알리는 민간 문화사절단 역할도 했다고 자부한다. 

<사진제공=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기에 처한 까닭은 무엇인가.
언젠가 고양시가 고양필을 품어 최소한의 안정적 운영기반을 지원해주길 기대하며 힘겨운 여건 속에서도 활동을 이어왔다.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들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민간 오케스트라를 도시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그런데 20여 년 활동해온 고양필의 기대가 지난해 전국공모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으며 큰 상처를 입었다. 나부터가 정신적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더 이상 유지할 여력이 고갈됐다. 다른 오케스트라가 고양시교향악단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 후, 고양필이라는 이름도 제대로 내세우기 힘든 상황이 됐다. 내년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20년을 버텨온 고양필의 역사를 그만 접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객관적 실력으로 전국공모에 다시 한 번 도전할 수는 없나.
솔직히 말해 교향악단의 연주실력은 연습량과 정확히 비례하고, 연습을 하려면 연주자들에게 수당이 지급돼야 한다. 그런 까닭에 고양필처럼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지역 오케스트라가 안정된 기반을 이미 갖추고 전국단위로 활동하는 오케스트라와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물론 고양필 단원들 한명 한명의 자질은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만큼 우수하다. 다만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 부족한 것이다. 더도 말고 2년만 안정되게 지원을 받으며 연습도 하고, 무대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고양필에게 주셨으면 한다. 그 후에는 전국의 어느 오케스트라와 경합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연주력을 갖출 수 있다고 자신한다.        
  
▶구체적인 바람이 무엇인가.
고양필을 경쟁 없이 고양문화재단 상주단체로 지정해달라는 것이다. 특혜를 바라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동안 고양필이 쌓아온 역사와 지역과의 밀착된 행보를 고려한다면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원이나 부천처럼 시립교향악단을 운영하려면 최소 연 50억~100억원의 예산이 드는데, 고양의 경우처럼 5억원 안팎의 예산으로 상주단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라면 지역의 자생적 민간 교향악단을 지원·육성하는 게 설득력 있지 않나.

▶고양필 후원회가 그동안 큰 힘이 됐던 것으로 안다.
물론이다. 100여 명의 후원회원들이 회비를 내고, 공연티켓을 구매하며 최선을 다 해 고양필을 후원해주시고 있다. 하지만 메인 후원기업이나 기관이 없는, 순수한 클래식 애호가들의 십시일반 성의에 기대어 교향악단을 유지한다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후원회원들이 쏟아주신 성원과 기대를 생각하면, 존립을 고민하는 처지에 놓인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어떻게든 고양필이 존속할 수 있는 방향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고양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양필은 그동안 고양시를 대표하는 클래식 문화예술단체라는 자부심을 갖고 정통 교향악단으로서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고양시 구석구석을 찾아가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만나 클래식의 감동을 전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고양필이 이대로 사라진다면, 지역과 호흡하는 교향악단이 다시는 만들어지기 힘들 것이다. 지역 밀착형 오케스트라를 지향해온 고양필의 가치를 살펴주시고, 고양필의 앞날을 함께 고민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사진제공=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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