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레노띠 침대 & 한양문고
‘한달에 한번 진짜인문학’
김인호 역사학자 초청 강연 

[고양신문] “고려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귀족사회’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고려 귀족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요?”
고양의 기업·지역서점인 알뜨레노띠 침대와 한양문고가 함께 마련한 ‘한달에 한번 진짜인문학’이 11월 강좌를 열었다. 4일 한양문고 주엽점 한강홀에서 진행된 ‘고려인의 삶으로 돌아본 현대인’이라는 강연을 통해 김인호 역사학자(광운대 인제니움학부대학 교수)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계층인 ‘귀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강연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고려 귀족에 대한 흥미로운 강의를 진행한 김인후 광운대학교 인제니움학부대학 교수.


12세기 무렵 배타적 정체성 형성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귀족’ 신분을 동경한다. 대한민국에서 귀족은 법률적 신분이 아니다. 다만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 최상층을 0.03%로 잡고 있다. 이들을 경제적 귀족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우리 역사에서 귀족이라는 신분이 전면에 대두됐던 시기는 고려시대다. 반면, 고려에 이어 등장한 조선은 ‘양반사회’로 칭해진다. 고려시대 귀족을 좁게 정의하면 공작·후작·백작 등 작위를 받은 이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폭넓은 혈통과 문벌 여부가 귀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배경이었다.
고려 귀족이 ‘우리는 남과 다르다’는 배타적 정체성을 형성한 시기는 12세기 무렵이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를 다녀간 후 기술한 『고려도경』이라는 책자에서도 ‘문벌귀족과 일반관리에는 분명한 차별성이 있더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음서제·정략결혼 통해 부와 권력 확대
고려시대에 대표적 귀족가문으로 성장했던 안동권씨 가문은 무려 9명이 봉작을 받았다. 이처럼 대대적으로 고위관직을 독점하고, 작위를 받고, 자손 숫자가 번성하는 것이 귀족의 1차 조건이었다.
이천 서씨 가문은 무려 3대가 연속으로 재상에 오른다. 이는 조선시대를 통틀어도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다. 그 중 한 명이 우리가 잘 아는, 외교의 서희다. 서씨 집안에는 ‘조상이 화살 맞은 사슴을 구해준 후 집안이 번성했다’는, 전설적 설화가 형성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집안이 잘 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신선 서사로 해석할 수 있다. 13세기에 융성한 현령 박씨 가문에도 거북이를 구해주고 부흥을 약속받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마도 당대의 유력 가문마다 비슷한 가문 서사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고가의 취미 즐기며 경제력 과시 
사실 고려 귀족 가문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촌주나 지역의 도적패 두목 등, 신라가 힘을 상실한 공백기를 틈타 세력을 키운 지방세력가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시간이 자손이 벼슬에 특별 채용되는 음서제, 공음전 등 땅을 하사받는 특전을 누리며 부를 늘렸다. 결혼 역시 계급과 신분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철저히 필요에 의해, 가문과 가문이 결합하는 형태의 결혼이 행해졌다.   
고려 귀족들은 희귀한 새와 국화를 기르고, 거문고를 즐기는 고급 취미를 즐겼다. 공작새와 앵무새 등 중국에서 고가로 수입한 앵무새와 공작새를 집안에서 기르고,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는 온실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청자로 구운 기와를 올린 정자를 지을 만큼, 오늘날에도 상상하기 힘든 호화스러운 삶을 누리며 경제력과 지위를 과시했다.

왕의 지위까지 넘보았던 이자겸
고려 중기의 대표 귀족인 이자겸의 경우를 통해 고려귀족의 위세와 권력이 어느 정도까지였는지를 살펴보자. 자신의 딸들을 예종과 인종과 연이어 결혼시키며(인종에게는 외조부인 동시에 장인이 되는 셈) 최고 권력을 누리게 된 이자겸은 어마어마한 사치와 축재를 누리며 백성들의 원성을 들었다는 기록이 여러 문헌에 나온다. 이자겸의 집에 머무는 문객이 1000여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도 전한다. 나중에는 사적 기관을 만들어 국가행정에 개입하고, 송나라에 사신도 제멋대로 파견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임금의 권위를 위협하기도 한다. 바로 이자겸의 난이다. 하지만 측근 척준경과 틈새가 벌어지며 권력을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최후를 맞는다. 이렇듯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고려시대의 사회적 역동성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도 경제적 계층 점점 고착돼
무신정권기를 거치며 귀족에 대한 의식이 조금 달라진다. 단순한 부와 권력을 넘어 글짓기와 문장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된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단순한 문장실력을 초월하는, 유학을 중심에 둔 종합적 공부 능력이 상류계급의 필요조건으로 부상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갈수록 경제력에 의해 계층이 고착화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계층을 뛰어넘어 결혼을 하는 일은 이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소수의 계층에게 권력과 부가 집중되는 사회의 폐해를 우리는 고려시대 귀족의 경우를 통해 되새겨야 한다.    

■ 이탈리아 명품 매트리스 알뜨레노띠 침대와 고양의 대표 지역서점 한양문고가 함께 마련한 ‘한달에 한 번 진짜인문학’은 2019년 1월 첫 강의를 시작해 매 달 다양한 분야의 강사를 초청해 수준 높은 강연을 진행했다. 1년 기획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강의는 최영환 동국대 공연예술학과 교수가 강사로 초청돼 ‘연극과 인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칠 예정이다. 12월 2일(월) 저녁 7시 한양문고 주엽점 한강홀에서 진행되며, 참가비는 1만원이다. 문의 및 신청 031-919-6144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