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재 취약지역 <장항동 인쇄산업단지를 가다>

▲ 하늘에서 바라본 경기 고양시 장항동 인쇄산업단지 모습. 왼쪽이 자유로와 한강이고 오른쪽으로는 일산신도시와 호수공원이 보인다. 장항동 인쇄산업단지엔 1700개 기업, 3만 명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주차된 차들로 더 좁아진 골목
마주오는 차량 뒤엉키기 일쑤

소방차 진입 5분 이상 늦어져
소방관들 출동 때마다 큰 부담
도로·주차장 등 기반시설 절실


[고양신문]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주도로의 잦은 정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골목길, 그 골목길마다 길옆으로 빈틈없이 주차돼 있는 승용차들. 이곳엔 대부분 10년이 넘은 오래된 샌드위치판넬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큰 위험은 화재다. 쉽게 타는 건물들이 몰려있는데, 길이 좁아 소방차 진입은 쉽지 않다. 길까지 복잡해 주소지를 찍고 가도 공장 출입구를 못 찾는 경우도 간혹 있다. 화재에 취약한 이 지역은 바로 자유로 일산 장항IC 인근, 일명 ‘장항동 인쇄산업단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장항공단 또는 장항인쇄단지.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인 이곳. 이유는 계획적으로 조성된 산업단지가 아니라 자생적으로 기업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공식 이름은 없다지만 규모로 따지면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40만 평 부지에 1700개 기업, 근로자 수만 3만 명에 이른다.

 
소방차 도착 전 자체진화하기도
“불 커졌다면 속수무책 당할 뻔”

지난달 10일 오후 1시36분 이곳 장항동 인쇄산업단지의 한 기업 냉동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원인은 전기합선이었다. 다행히도 직원이 항상 다니는 창고라서 불이나자마자 발견돼 곧바로 119에 신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방차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 직원들은 총력을 다해 진화에 나섰다. 20㎏짜리 대형 소화기 2대와 4~5개의 소형 소화기를 활용, 간신히 불이 잡히자 그제야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고 후 15분쯤 뒤에 도착한 소방차는 불길이 잡힌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당시 진화작업에 나선 회사직원은 “다행히 우리 냉동창고가 불연소재였고, 대형 소화기도 구비돼 있어서 진화할 수 있었다. 일반 샌드위치판넬이었다면 소방차가 오기 전에 옆 건물까지 크게 번질 수도 있는 불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위성사진으로 보면 장항동 인쇄산업단지의 샌드위치판넬 건물들이 얼마나 밀집돼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소방차 가는 길마다 장애물
길 좁아 5~10분 지연되기도

장항동 인쇄단지는 화재에 취약한 요소들이 모여 있는 집합소와 같다. 산업단지 주 출입구부터가 문제다. 자유로와 바로 연결되는 굴다리 교차로는 출퇴근 시간대면 정체된 차량이 수십 미터 꼬리를 물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중심 도로마저 왕복2차로의 좁은 도로이기 때문인데, 앞차가 서면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창고 건물이 몰려있는 골목길이다. 좁은 골목길은 옛날에 쓰던 농로를 포장해 놓았을 뿐 폭은 수십 년 전과 같다. 그 좁은 길에 양쪽으로 또는 한쪽으로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만한 공간만 남겨두고 출퇴근 차들이 일렬로 쭉 주차돼 있다. 이곳에선 마주 오는 차가 비켜줄 공간이 부족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레일러가 골목길에 진입할 때는 20분 이상 골목길이 마비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만에 하나 소방차가 출동할 때 그런 큰 차가 골목길을 막고 있다면, 앞뒤로 막힌 차들로 화재 초동진화를 눈앞에서 포기해야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장항119안전센터 관계자는 “이곳은 좁은 길에 교통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비켜주고 싶어도 비켜줄 공간이 없어 간혹 출동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며 “짧게는 5분, 길게는 10분까지도 지연되는데, 그러다보니 이곳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부담부터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물탱크차나 사다리차 같은 길이가 긴 소방차는 회전반경이 켜서 골목길 진입을 실패해 뒤로 멀리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며 “화재안전을 위해서는 도로환경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장항동 화재로 샌드위치판넬 건물에 진입하고 있는 소방관들. <독자 제공>
 


건물의 형태와 소재, 건물 간 이격거리도 화재에 매우 취약한 환경이다. 일산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장항공단은 창고형 건물이 대부분인데 거의 모두가 불이 잘 붙는 샌드위치판넬로 만들어져 있다”며 “이런 건물들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대형화재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샌드위치판넬이 불연소재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옛날 건물들은 불연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곳 장항공단 건물들은 한번 발화하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불이 번진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인접 건물들까지 함께 전소될 가능성이 높다.

복잡한 길도 문제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도 출입구와 반대편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많아 소방차들이 화재가 난 곳을 헷갈려 하는 경우도 있다. 소방관들은 이를 대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골목길을 다니며 지리를 미리 숙지해야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 소형 지게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 길가에 주차된 차량으로 사진처럼 큰 트럭이 진입할 수 없는 길도 있다.



기업인 “공용주차장 만들어 달라”
시 “땅값 너무 올라 매입 힘들어”

이런 위험한 환경에 기업인들은 골목주차의 원인이 마땅한 주차시설이 없어서라며 고양시가 주변에 공용주차장을 설치해주면 도로환경은 이전보다 훨씬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는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부지를 매입하기에는 장항동 일대 땅값이 너무 올랐다며 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장항공단 일대는 이미 기업들로 포화상태에 있어 개발이 가능한 빈 땅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또한 주변 호수공원 일대가 개발이 확정되면서 땅값도 오를 대로 오른 상태다. 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차장 용도의 땅을 시가 매입하거나, 도로에 인접한 사유지를 사들여 길을 넓히는 방법뿐이지만 시 입장에선 비용투자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해결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공용주차장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폐교 부지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교육청이 난색을 보였다”며 “다른 대안이 있는지 현재 확인 중에 있지만 현실적으로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

 

<인터뷰> 홍사룡 장항동기업인협회 회장

1700개 기업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 홍사룡 장항동기업인협회 회장


화재위험, 무엇이 가장 시급한가.

예전부터 고양시에 주차장 건립을 요구해왔다. 이곳은 건폐율과 용적률이 낮아 기업들이 주차공간을 따로 확보하기 어려워 근로자들이 노상에 주차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 시가 어떻게든 주차장을 확보해 준다면 도로환경이 쉽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도 없는 곳이라 근로자들이 출퇴근 차량을 포기할 수는 없다.

또 다른 대안이 있나.

길을 넓히기가 당장은 쉽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시가 완전히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로 경계선까지 신규 건물들이 지어지는 것은 막았으면 한다. 이를 위해 접도구역을 지정해 도로 폭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작은 규모라도 소방서를 산업단지 내에 만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곳은 화재뿐 아니라 치안도 불안한 곳이다. 단지 안에 소방서와 치안센터(파출소) 등을 설치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 외 고양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입지조건이 좋다는 이유로 기업인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는데, 고양시는 20년이 넘도록 우리를 방치해왔다. 좁은 농로길이 포장된 것 외에는 환경개선된 것이 거의 없다. 고양시나 경기도 또는 중앙정부의 계획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양시가 자족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외부 기업을 끌어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있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