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155마일 15박 16일 걸어서 완주
평화 열망 담은 시조집 『이 길』 출간한
박영규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산역 근처의 한 베이커리카페에서 만난 박영규 교수.

[고양신문] 신문사로 작은 책 한권이 배달됐다. 『이 길』이라는 제목을 단 작은 책 속에는 불볕더위가 절정이었던 지난 8월,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파주 임진각까지 DMZ 155마일 평화의 길을 15박 16일 동안 도보로 걸으며 길 위에서 쓴 시조 130수가 담겨 있었다. 동해 화진포, 설악산 만해마을, 미시령, 인제천리길, 비수구미, 철원 노동당사 등 여정에서 만난 장소에 대한 감흥을 읊기도 했고,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열망을 두 발로 꾹꾹 다진 작품들도 이어진다. 경탄과 회한, 묵상과 다짐 등 다채로운 감정을 3연으로 짜여진 간결한 분량 안에 녹여낸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글쓴이가 궁금해 만남을 청했다. 책을 보내온 이는 박영규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다. 박 교수는 일산에 15년째 살고 있는 고양의 이웃이다. ‘박한뫼’라는 필명에서도 사는 곳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일산의 우리말 이름이 한뫼 아니던가.
“최근 ‘고양바람누리길 걷기대회’에 아내와 함께 참가해 30km를 완주했는데, 덕분에 고양신문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됐죠. 가벼운 마음으로 제 책을 보내드렸는데, 인터뷰까지 청해주시니 영광입니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마련한 DMZ 155마일 걷기행사에 참가하며 박 교수는 대립과 긴장의 공간이 생태와 역사의 보물들이 가득한 곳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DMZ를 “분단이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이라며 “어서 빨리 통일을 이뤄 DMZ가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보전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책 표지에 박 교수는 스스로의 취미를 달리기, 걷기, 그리고 시조쓰기라고 밝히고 있다. 언제부터 시조를 쓰기 시작했냐는 질문에 뜻밖에도 “2016년 겨울 촛불 혁명 때부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촛불 광장이 이어지던 수개월동안,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격정을 시조라는 형식을 선택해 자신만의 방식대로 정리하며 역사적 시간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이후 박 교수에게 시조 쓰기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최근에는 시사문제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담은 시조를 꾸준히 짓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시사시조’라는 타이틀로 자신이 쓴 작품들을 거의 매일 업데이트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됐다. 마치 시사만화가가 매일 만평을 그리듯, 박 교수는 시사시조를 통해 이념과 정파에 상관없이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글쓰기 장르 중 시조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어디서든 간단히 메모하듯 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요. 책에 담은 작품들도 DMZ를 따라 걸으며 그날그날 떠오른 생각들을 스마트폰 자판을 이용해 적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장르는 결코 아닙니다. 단 세 줄의 정형화된 형식 안에 주제와 감상을 담아내려면 오랜 연습과 깊은 성찰의 과정이 있어야 하니까요.”

박영규 교수가 '박한뫼'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책들.

박영규 교수가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에는 ‘로스쿨 교수가 꿈많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인생 지침서’라는 부제를 단 『사랑하는 아들에게』라는 책을 내기도 했고, 아내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체험을 담아 『까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책을 e-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성실히 표현하고, 그것을 살뜰한 결과물로 엮어내는 일에 능숙한 박영규 교수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아보였다.

“전공을 살려 유튜브 독자들에게 알기 쉬운 법률 상담을 해 보고도 싶고, 생활 속에서 시조를 감상하고 창작하는 동호인 모임도 만들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참, 은퇴 후 귀농을 준비하기 위해 고양시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주말텃밭을 얻어 농사짓는 연습도 시작했습니다. 물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토 이곳저곳을 걸으며 시조를 짓는 일도 지속할 생각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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