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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고, 덜어내고(補不足 損有餘)<높빛시론> 고광석
  • 고광석 대명한의원장
  • 승인 2019.11.21 10:38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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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석 대명한의원장

[고양신문] 늦은 나이에 배우는 게 많아서 늘 시간에 쫓기며 산다. 성과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변화하고 발전할 거란 희망으로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얼마 전 정말 큰 시련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 세월 취미로 해오고 있는 악기 연주를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께 지도를 받고 있는데 그간은 잘한다 잘한다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더니 어느날 본 마음을 내비치며 질책을 하신다. 그것도 다른 교습생과 비교를 해가며. 나름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따라했는데 소리가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정말 무안하고 속상해 몸 둘 바를 몰랐다. 이제 그만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그래도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고 문제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그간 나는 선생님 가르침에 집착해 배와 입술에 너무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밤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다음 날 생각 했던 대로 연주하니 부드러운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 풀지 못했던 문제가 풀린 것이다. 이렇듯 사소한 변화로 큰 영향을 받는 것을 넛지(nudge)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와 케스 선스타인 교수가 쓴 책 제목이다. 경제학 서적이지만 우리현실에 맞닿은 심리와 사회현상에 대한 이야기라 아주 재밌게 봤다.

그중 가장 인상에 남는 이야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이야기였다. 이 화장실의 모든 남자용 소변기에는 중앙 부분에 검정색 파리가 그려져 있다. 대개 남자들은 볼일을 볼 때 조준하는 방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변기 주변이 더러워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눈앞에 목표물이 있으면 거기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파리 그림이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을 80%나 감소시켰다고 한다. 남자들의 단순함인지 아니면 고도의 집중력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정말 좋은 시도였다 하겠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작은 변화가 아니라 거대한 변화를 위해 한 걸음 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이 변화를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방법을 숙고해 온 사람들에 의해 그 일이 실현되려고 하니 변화를 싫어하는 수구세력의 반동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간 우리가 너무나 모르고 있던 최고 권력집단, 그들로 인해 없는 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있는 죄가 없어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잣대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틀린 법 적용을 받으며 비틀린 삶을 살아왔던 것인지 억울한 마음이 몹시 크다. 그들 집단을 바꿈으로써 이 사회에 일어날 변화가 자못 기대된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아마 다시는 그런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정혜신 정신과 의사의 책 ‘당신이 옳다’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적정기술의 예가 있다. 아프리카 어느 마을 식수가 부족해 아이들은 아침 일찍 물동이를 지고 물을 길러 나선다. 몇 시간을 걸어가서 물을 길어 이고 지고 되돌아오는데, 아이들의 불완전한 걸음과 부실한 물동이 때문에 절반은 돌아오는 동안 흘러서 사라진다. 그 딱한 사정을 접한 디자이너가 사람들과 힘을 합쳐 큰 공(드럼통) 모양의 물통을 만들었다. 그 후 아이들의 삶은 달라졌다. 아이들은 물을 꽉 채운 물동이를 놀이하듯 굴리며 돌아온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의 물을 운반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저장도 가능하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삶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물 긷느라 갈 수 없었던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물통 디자인 하나가 바꿔놓은 일상의 기적이다. 흔하디 흔한 적정기술의 사례도 넛지의 예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노자님의 말씀 중에 부족한 것은 보충해 주고 남는 것은 덜어내라는(補不足 損有餘) 구절이 있다. 그간 너무 혼자만 잘하려 했던 일들을 이제는 좀 나누면 좋을 것 같다. 이제 온 국민이 당신들의 과한 권력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겸손한 태도로 그 권력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 국민들처럼 인정에 약한 사람들이 없다. 잘못을 뉘우치는 이들을 차마 벌하지 못해 지금까지 당하고 있으면서도 또 언제나 죄지은 자들을 용서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그런 선량한 국민들에게 더 사랑받는 당신들이 되어 주길 바란다. 유교의 정치이념도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것은 도우라(抑强扶弱) 하였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비굴한 모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하는 진정한 힘(권력)으로 다시 태어나길 빈다. 이제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고광석 대명한의원장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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