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현 경기도의원 기고문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1월 6일 도정질의에서 ‘쏟아냈던’ 경기연구원과 산하기관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부당한 노동실태에 대한 이재명 지사의 대답이다. 그의 단호한 답변처럼 정말 아무 문제가 없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자는 지난 한달 간 만난 경기도 내 산하기관의 ‘투명인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관리직으로 입사해 10년차가 된 정우석씨(가명)는 10시가 넘었지만 퇴근을 하지 못한다. 52시간제가 시행된 후 업무량은 늘어가는데 연장근로 12시간을 결코 넘기지 말라는 지침 때문에 미리 퇴근도장을 찍고 다시 일을 한다. 우석씨는 자신의 능력부족이라 자책하며 더 열심히 일하지만 이번 주만 22시간 넘게 야근했다. 법정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10시간은 투명인간이었다.

올해 석사급 연구원으로 취직한 김경선씨(가명)는 서울연구원과 인천연구원에 취업한 친구들과 모여 서로의 연봉 이야기를 나눴다. 충격이었다. 경선씨의 급여는 친구들의 70% 밖에 되지 않았다. 경선씨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며 연봉 현실화를 요구했다. 경영진은 급여수준에 맞는 단순노무를 주겠다고 했으나 현실성이 없었다. 오히려 내년 박사급 연구원 12명이 추가 채용되면 경선씨의 업무량은 더 늘어나 더 많이, 더 자주 사라지는 투명인간이 될 것이다.

유채철씨(가명)는 17년 전 행정보조직으로 뽑혔다. 그를 비롯한 행정보조직 직원들은 업무강도, 업무량, 전문성 등을 요하는 책임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헌데 채철씨는 18년차가 되었지만 회사는 그의 보수를 최대 12호봉만 인정한다. 내년에 입사할 관리직 신입사원은 채철씨에게 업무를 배울테지만 새내기는 곧 대리가 될 것이고 과장, 부장이 될 것이다. 30년 정년을 채워도 승진과 급여인상을 기대할 수 없는 채철씨는 또 하나의 투명인간이다.

경기도는 공정한 노동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노동국을 신설했고 이재명 지사는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경기도’를 천명하였다. 그렇다면 경기도 내 공공기관과 공기업부터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한낱 구호처럼 여겨졌던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고 새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재명 지사가 그의 자서전 <이재명의 굽은 팔>에서 자신을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며 불의의 사고까지 당한 소년노동자였다고 했다. 그 사고로 팔이 굽어 장애를 갖게 됐지만 이를 통해 상처받고 소외됐던 이들을 위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법의 보호 밖에서 일하는 투명인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재명 지사의 ‘굽은 팔’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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