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수남

정수남 소설가. 일산문학학교 대표

[고양신문]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서 파격적인 인상액을 제시해 우리 국민들의 울분을 자아내고 있다. 울분을 쏟아내는 더 큰 이유는 5배 인상된 액수도 액수이지만 미국의 협상 태도다. 입국한 뒤로부터 마치 점령군처럼 오만불손하게 행동하는 협상멤버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그들의 본색을 인지하게 된 것 같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이번에 취한 일련의 행동은 동맹국 사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우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청구하는 금액 역시 협상을 통해서 결과를 도출해 내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언동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동맹의 개념이 아니라 용병의 개념으로 봐도 될 성싶을 정도였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건국초기의 군정시대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의 역사적 현실을 되새기며 지금까지 견지해온 한미동맹을 곱씹어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타성에 젖은 많은 국민들은 지금도 미국을 우리의 굳건한 혈맹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방약무인으로 일관된 이번 행동을 보면서 그들 가운데 대부분도 미국이 최소한도의 예절을 갖추고 납득이 될 수 있는 청구서를 들고 왔어야 했다는 게 중론으로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 거기까지는 이미 우리 국민들이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모두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므로 더 이상 첨언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를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가,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 사실 우리는 이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던 난국도 힘을 모아 슬기롭게 넘겨온 역사를 가진 민족이 아닌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동아시아 방어선 구축의 모순을 지적하고, 국가주의로 급선회한 그들을 탓한다는 것 역시 시간 낭비에 다름 아닐 것이다. 또 5조원이 넘는 액수를 들고 압박할 거라는 예상을 사전에 예단하고 준비하지 못한 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외교활동도 탓해서는 안 된다.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본다. 그들이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극단적 카드와 함께 연내에 청구액대로 타결이 되지 않으면 주한미군 노무자들의 무상휴가까지도 불가피할 거라는 엄포를 거듭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응해야 하며, 아울러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주한미군은 모두 물러가라는 ‘철수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남북의 대치국면에서 당장 균형을 잃지 않을까 염려하는 보수층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시적 국익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로, 우리 민족이 결국 언젠가는 한 번 겪어야 할 일을 조금 일찍 앞당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국익을 위한 운동에는 여야와 보수, 진보가 따로 나뉠 수 없다고 본다. 또 손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방관자들이 있어서도 아니 된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일사불란하게, 자주라는 의미를 가슴 깊이 되새기며 우리 헌법에 명시된 진정한 주권을 강력하게 관철시켜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정부 관계자들이 그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며, 곧이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똑같은 분담금협상에서 약소국가들이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줘야 할 것이다.

이 운동은 ‘무임이라도 우리는 상관없으니, 협상에 당당히 임해 달라’고 외치고 있는 주한미군 노무자들이 벌써 앞장서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이를 오히려 통일의 기틀을 앞당기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탱케 해준 우방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겠지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또 70여년이 넘도록 우리 민족이 이루지 못하고 있는 통일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아무튼 이번의 사태를 통해서 미국은 우리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린 게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협상을 위해 우리가 가진 묘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유사한 미국의 요구가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걸핏하면 그와 같은 요구를 우리에게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것일까. 우리가 그처럼 만만하게 보이는 것일까.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는 이번 기회에 우리가 ‘봉’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다. 우리는 결코 ‘봉’이 될 수도 없을뿐더러 되어서도 안 된다. 지난 정권들이 해온 것과 같은 전철을 밟아 또 다시 얕잡혀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게 볼 때 이제 주한미군 철수운동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그와 같은 인식을 일식시키고 다시는 그들로부터 수모를 당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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