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태원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박사

[고양신문] 지난달 소방공무원법과 소방기본법 등 6개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내년 4월부터 모든 소방공무원은 국가직으로 전환된다. 지금은 소방청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방공무원이 지방직이다. 통상 국가직은 중앙정부가, 지방직은 지자체가 인사와 예산권 등 권한을 가진다. 돌이켜보면,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시도했으나 예산의 벽을 넘지 못하다, 최근의 제천과 밀양 화재참사에 이어, 포항 지진과 고성 산불 등 대형 사고에 국가적 차원의 효율적인 대응이 제기되며 결실을 보게 됐다.

연간 300만 건이 넘는 각종 사고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자 불철주야 애쓰는 소방관들의 처우가 개선되고 애로가 해소된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할 일이다. 특정직 공무원의 형태로 국가직으로 운영되어온 군인이나 경찰과 달리, 전국 소방공무원 5만여 명 중 대부분은 지방직 공무원으로 지자체에 소속돼 있다. 그로 인해 소속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인력이나 시설과 장비의 지원에 편차가 크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인터넷을 통해 사비로 안전장갑을 구입한다는 전직 소방관의 증언이 사회적 공분을 사기도 한 터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국가직 전환에 필요한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정부는 현재 20%인 소방안전 교부세를 45%로 올리고, 담배 개별소비세 인상을 통해 이 재원을 마련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금은 소방안전 교부세가 주로 소방장비와 안전시설 확충 재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여기에 전환될 소방공무원의 인건비를 추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환이 단지 재정부족의 문제였다면 부족한 인력과 장비 및 처우개선을 위해 중앙정부가 과감히 나설 수는 없었을까.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공약인 지방분권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지방자치를 본격 시행한지도 20년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의 지방자치는 아직 초보단계다. 이를 인식한 현 정부도 지방분권 강화를 목표로, 지방정부 권한의 획기적 확대와 신속한 시행 그리고 주민참여 확대 등을 담은 개헌을 추진했었다. 지금으로선 임기 내 개헌이 불투명해 보이지만, 지방분권에 따라 국민이 받게 될 혜택과 장점을 구체적인 사안들을 예로 제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문제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모든 경우에 그렇듯, 지방자치 시행에도 장단점이 따른다. 권한의 분산을 통한 개인의 권리와 책임의식 고취에 따른 시민의식 신장, 주민복지의 효율적 증진, 지방정부 사이의 경쟁을 유발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 반면, 규모경제 측면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고, 재정자립도에 따라 행정서비스의 형평성 문제와, 지역개발과 관련해 지역이기주의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국가에서 맡을 국가사무와 지방정부에 이양할 지방사무의 합목적적 분류, 그리고 상호간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소방공무원을 중앙정부가 통합해 운영, 관리하면 효율성이 향상되는 측면이 있다. 부유한 수도권이나 대도시 지역의 지자체와 지방의 중소도시나 농촌지역 지자체의 재정여건에 따른 차이도 해소될 것이다. 그 뿐인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관리할 때 불가피하게 발생될 수 있는 서비스 수요변동에 따른 대응한계도 극복될 수 있다. 즉 평상시와 달리 휴가철에 인파가 밀리는 관광지나 대규모 재난재해 발생지역의 경우, 일원화된 관리체계를 통한 집중 지원으로 지역별, 시기별 서비스 수요의 변화에 능동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소방당국의 실제 업무 중 본연의 기능인 화재 등 재해재난 대응 출동 비율은 10% 미만이고, 구급 등 이외의 출동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단순한 사고나 불편한 증상에도 도움을 호소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지만, 화재는 물론 다양한 사고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방당국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국민의 신뢰는 분명해 보인다. 한편으론 각자 맡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때, 과연 국가직 공무원이 이와 같은 지역주민의 다양한 서비스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됐었다. 이번 법령 개정에 이와 같은 우려를 반영해 지자체에 소속된 소방공무원의 임용권은 자치단체장에게 위임하고, 중앙정부는 전국 소방공무원의 정원만을 관리한다니 다행이다. 국가적 차원의 대응과 지역주민 서비스 사이에서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 지방자치로 가는 길목에서 역주행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