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경기 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

[고양신문] KBS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시청자라면 ‘정숙’이란 이름을 알 것이다. 주인공 동백의 엄마가 바로 정숙이다. 그의 표현대로 ‘죽을 날을 받아놓고’ 일곱 살에 버린 동백을 다시 찾아와 3개월을 함께 살았다. 동백이 정숙에게 나와 함께 산 7년 3개월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정숙은 동백에게 ‘적금’같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지난 삶을 고백했다.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다고,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다고.

남편의 폭력을 못 견디고 두 살배기 동백을 끌어안고 집을 나와 비혼모의 삶은 선택한 정숙이었다. 집도 없어 숙박가능한 일터를 찾아 전전했고, 그에겐 술 관련 업소의 주방일만 주어졌다. 술집을 찾은 낯선 손님들에게 ‘오빠’라 부르는 일곱 살 딸을 보고 그는 술집을 뛰쳐나왔지만, 일자리는 없고 손 내밀어 주는 이도 없었다. 그는 고아원에 가면 학교도 공짜로 보내준다며 일곱 살 동백이를 고아원에 놓고 왔다. 그가 담담하게 사는 것이 벌 받는 것 같았단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며 머리가 띵 했다. 벌 받는 것처럼 힘들게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나 싶어서였다.

‘자살공화국’이라는 악명이 붙은 대한민국에 자살이 늘고 있다. 오늘도 빠짐없이 뉴스에는 ‘생활고’, ‘비관’, ‘자살’ 등이 들렸다. 지난해만 경제적 이유로 3390명이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오늘도 또 열 명이 경제적인 이유로 삶을 마감했을지 모른다. 정숙의 삶처럼 손 내밀 가족도 친구도 없고 국가마저 국민을 외면하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 떠들썩하게 내년 예산이 통과되었다. 500조가 넘는 ‘슈퍼예산’에서도 기초노령연금 예산은 삭감됐다. 기초연금은 소득하위 70% 이하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주어진다. 하지만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은 기초연금을 받는 즉시 뱉어내야 한다.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돌려주지 않으면 생계급여만 깎인다. 소득 하위 40% 노인까지 최대 월3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한다고 하지만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가장 필요할 빈곤층에게 기초연금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 37만 명의 생계급여 받는 노인에게 매달 1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안을 예산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예산은 늘고, 기초연금 예산은 깎였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율 1위의 불명예를 없앨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의석’을 지키기 위해 염치조차 팔아먹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민식이, 하준이 등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협상도구로 삼으려던 후안무치를 기억할 뿐이다. 국가와 정치가 국민들을 각자도생하라고 밀어내는 사이, 또 누군가는 그만 벌 받고 싶어 생을 마감할 선택을 할지 모른다. 모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그에게 주어졌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질문을 던지는 죽음이 늘어나고 있다. 한 해 끝자락, 어쩌면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를 서로를 위로하며, 내일은 버티는 대신 꿈을 꿀 수 있는 삶을 위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에게 기본소득이 있다면 어땠을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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