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귀종의 경제칼럼>

[고양신문] 최근 서울 성북구에서 네 모녀가 경제적 처지를 비관해 동반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인천에서는 기초 수급자였던 일가족 네 명이 동반 자살했는데, 스물네 살의 젊은 아들과 대학생 딸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태도는 대체로 단호하다. 가난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방적인 도움은 가난한 사람들의 나태를 부추기고 일할 의욕을 꺾는다고 주장한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MIT 대학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 평생 발로 뛰며 가난한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그 이유를 연구했다. 많은 경우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의 30% 이상을 술, 담배 등의 기호품을 사는데 투입한다. 좀 비싸도 영양가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선호한다. 후진국의 극빈자 가구 중에는 TV, 위성수신안테나, DVD 기기가 갖춰진 집들도 많다. 더욱이 가난한 가정의 부모는 자녀의 학교 교육에 무관심하다. 자녀들도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뒤플로 교수가 현장에서 찾아낸 이유는 의미심장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내일이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설령 있더라도 미래 소득이 현재보다 높다는 보장이 없다. 그들은 기회의 실현과 생활의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내일의 희망보다는 당장 오늘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물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무엇보다 가난한 부모들은 현재의 교육과 미래 소득 간에는 통과하기 힘든 S자형 곡선이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S자형 곡선그래프의 가파른 부분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학교 교육이 너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후진국은 대부분 과거에 식민지였다. 식민통치 시절 학교 교육의 목적은 식민지 엘리트를 본국의 충실한 동맹세력으로 만들고 이들과 서민 간의 격차를 극대화하는 데 있었다. 이제 식민지는 독립했지만 교사들의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우수한 학생을 골라내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남녀 차별이나 계급 격차가 심한 나라에서는 자신감이 떨어지면 학습 능력도 덩달아 떨어지는 소위 고정관념의 위협 효과 또한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예컨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수학을 못한다거나, 하위 계급은 열등하다는 고정관념을 주입한 실험군과 그렇지 않은 대조군 사이에는 상당한 점수 차가 발생한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우리 역시 가난한 사람들은 벌이만 없는 게 아니라 내일의 희망이 없다. 학교는 개인의 특수성을 찾고 그 소질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어려운 교과 과정을 통과할 사람을 걸러내는 곳으로 인식된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가난한 가정의 학생은 이런 학교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그사이 부자 부모들은 인맥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며 자녀들의 대학입시를 돕는다. 이렇듯 가파른 S자형 곡선그래프는 한국에도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은 의지가 부족하다고, 가난한 사람의 자식은 열등하다고 믿는다. 가난한 이들 스스로도 우리에겐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만다. 그 사이 비상식적이고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생겨난다. 가난한 부모와 젊은 자녀가 함께 자살하는 것이 그 중 하나다.

가난은 수천 년 동안 우리 곁에 있었다. 기본소득제와 같은 수동적인 복지제도가 근본적인 답을 줄 수 있을까? 그것으론 부족하다. 일자리 창출과 공동체 의식 회복이 유일한 해법이라 생각된다. 학교는 재능 발견의 공간이 돼야 하고, 일자리는 각자의 재능을 살려나갈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 다양한 수요가 존재하는 도시는 창업자와 풀뿌리 인재를 연결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부동산 가치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한 공동체의 주요 단위가 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은 삶의 터전으로부터 걷은 재산세를 지역 서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투입해서 기회와 다양성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 하고, 언론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모아 도시의 공동체 의식을 선순환 시키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삶의 희망은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해법을 찾는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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