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양구 원흥동에 사는 주선자 할머니

[고양신문] 2020년 경자년 흰쥐띠 새해가 밝아온다. 이맘때면 고양지역 90세 이상 장수어르신을 취재해왔다. 이번 주인공은 101세 주선자 할머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과 새우젓을 즐겨 먹는 것이 건강을 유지한 비결”이라고 말했다.

‘190507’로 시작하는 주민번호를 또렷하게 말하며 해맑게 미소를 보인 주 할머니는 다양한 역사를 가득 품은 강화도가 고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는 임금님이 드시던 새우젓으로 유명해서 10월이면 축제도 연다. 주 할머니도 어린시절부터 매 끼니마다 새우젓을 먹고 자랐다. 100살이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새우젓은 단골메뉴다. 

주 할머니는 “뜨끈한 밥 한 숟갈 떠서 그 위에 연분홍빛 나는 야들야들한 새우젓 2~3마리 올려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소화도 아주 잘 된다”고 극찬을 했다.

집안은 그야말로 뼈대 있는 가문으로 친정할아버지가 이조 말엽 감찰(법무장관)을 지냈고, 사촌오빠가 그 당시 서울제일은행장을 했다. 부친은 한의사이며, 지금도 남아 있는 하도초등학교를 설립했다. 같은 고향 사람인 신환철(작고)씨와는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결혼(신부 22세, 신랑 20세)했다. 남편 친동생인 신의철(작고)씨는 중국에서 김좌진 장군과 독립운동을 함께 했으며, 현재는 대전 현충원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부친은 국수공장을 크게 하며 한학자로 지냈다. 남편은 결혼 전 일본 동경대학교로 유학을 다녀왔고, 결혼 후 서울 성북구에서 ‘현대피복사’란 상호로 종업원 80여 명을 고용해 양복기지창고와 양복제조공장을 크게 운영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복을 만들어 준적도 있다고 한다. 그 무렵 야간방범순찰대장을 하며 대한청년단 성북구단 훈련대장까지 역임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원들을 데리고 경찰관들과 전투에 참가 했고, 집으로 인민군이 들이닥쳐 끌려가 야산에서 피살됐다. 가족들이 몇 회에 걸쳐 보훈처에 탄원했으나 지금도 제대로 된 예우를 못 받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주 할머니는 그 흔한 성인병은 없지만 남편이 끌려갈 때 못 데려가게 말리다가 인민군에 의해 고막이 터지면서 넘어졌다. 그 때의 충격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귀도 빨리 먹었으며, 듣는 게 불편하고 심적 고통이 아직도 크다. 

‘야! 이놈아 안돼!’ 하는 잠꼬대를 많이 하는데, 그무렵의 충격이 낳은 후유증이다. 신앙생활로 겨우 마음을 회복해서 남편의 몫까지 생을 영위하는 듯하다.

남편 시신도 수습 못 하고 가슴에 응어리를 간직한 채 재봉일과 옷감장사 등 온갖 고생을 하며 2남 2녀를 키워냈다. 지금은 자손이 23명이나 된다. 큰아들(신상화)은 32년간 경찰공무원으로 지냈고, 파출소장으로 퇴직 후 지금도 다양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며느리도 복지관에서 12년째 봉사활동 중이다. 막내아들(신상영)은 생태관련 봉사를 하며 며느리도 꽃꽂이 봉사를 10년 넘게 하고 있다. 딸 둘도 봉사활동을 하며, 사위들은 무역업과 교사로 퇴직했다.

지난 5월 100수 잔치를 했던 주선자 할머니는 "자손들에게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평소에도 당부하고 있다"며 "남편의 의로운 죽음이 재조명되어 명예 회복되는 것이 살아생전에 소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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