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강화도 북스테이 ‘책방 시점’ & ‘책방국자와주걱’

[고양신문] 연말과 새해. 아쉬움과 흥청거림, 기대와 걱정이 뒤섞이는 시간을 통과하다 보면 정작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일상의 소음들을 잠시 떠나 책과 함께 느긋한 하룻밤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고양에서 일산대교를 건너 30분을 달리면 도착하는 인천 강화도 마니산 부근에 책의 온기를 품고 있는 북스테이 책방 두 곳이 있다. 각각 길상면과 양도면에 주소를 둔 ‘책방 시점’과 ‘책방국자와주걱’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색깔을 지녔다. 혼자여도 좋고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여도 좋다. 지치고 방전된 ‘멘탈’의 빨간불을 초록색 불로 바꿔 줄 영혼 충전소를 찾아가보자.
(■ 동행취재 : 대학생독자 유혜지·전유진씨)

 

'첵방 시점' 마당을 향해 난 창.

청년 주인장 3명의 꿈이 담긴 곳
바삭바삭 담백한
 ‘책방 시점’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는 김포 대명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마니산으로 달려가기 전에 만나는 활기찬 소읍이다. 온수리 읍내에서 5분 거리, 전등사를 품은 정족산 반대편 기슭에 ‘책방 시점’이 자리하고 있다.

책방 시점은 돌김, 부추, 우엉이라는 닉네임으로 부르는 세 명의 청년들이 천편일률적인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 문화적 소통 공간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해 만들어진 곳이다. 3년간의 준비를 거쳐 지난 4월 문을 연 만큼 공간 하나하나에 주인장들의 세심한 안목이 배어있다.

소장된 책은 1600여 권, 책방 치고는 많은 편은 아니지만 주인장 돌김은 적당한 규모라고 대답한다.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형서점에서 오히려 선택의 혼란을 겪기도 하잖아요.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분량으로 책들을 잘 선별해 놓으면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취재에 동행한 고양신문 대학생독자 전유진, 유혜지씨(왼쪽부터).

세심한 큐레이션을 거친 책들은 하나의 주제로 묶인 책들과 이웃하며 표지가 정면으로 보이도록 꽂혀 있어 책 한권 한권이 가치를 존중받고 있는 느낌이다. 책은 대개의 서점이나 도서관이 적용하는 십진분류법을 따르지 않고 ‘질문·발견·관점’이라는, 책방 시점의 철학이 담긴 기준에 맞춰 선택되고 진열됐다. 젊은 작가의 작품세계나 소규모 출판사들을 조명하는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에 대한 코멘트를 첨부하는 것과 같은, 주인장들의 성향이나 의견이 과도하게 드러나는 방식도 자제하고 있다. 책방 시점을 일부러 찾아올 손님이라면 각자의 안목으로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만한 이들이라는 판단에서다.

북스테이를 할 수 있는 방은 3개다. 1층 책방과 이어진 방이 둘, 나머지 하나는 3층 다락방이다. 2층은 주인장 3명이 묵는 집이다. 돌김은 “책도 있는 펜션이 아니고, 잠도 잘 수 있는 책방”이라며, 방점을 명확히 ‘책’에 찍었다. 그런 만큼 숙소는 무척 미니멀하다. 3층 다락방에 올라가 보니 TV도 PC도 없고, 정갈한 나무 탁자와 깔끔한 침구가 마련됐을 뿐이다. 대신 낮고 길게 열린 유리창 너머로 한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만사 제쳐 두고 한나절 뒹굴거리고 싶어진다. “하룻밤 책을 읽는다고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질문 하나를 집요하게 묻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밤새 책을 읽고 일어나면 주인장이 준비한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마당에서는 강아지 두 마리가 손님들을 반겨준다. 울타리 문패를 보니 이름이 ‘마니’와 ‘전등’이다. 귀엽게 눈망울을 굴리는 마니와 전등이는 책방 시점이 장착한 극강의 경쟁력이지 싶다.

주소 : 강화군 길상면 마니산로 101-16
전화 : 010-9931-0301

세심한 북큐레이팅을 보여주는 '책방 시점'.
'책방 시점'의 마스코트 마니와 전등이.
'책방 시점' 주인장 3인방 중 한 명인 돌김.
강화군 길상면에 자리한 '책방 시점'. 안팎으로 맵시있고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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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외갓집같은 편안함
무심한 듯 그윽한 ‘책방국자와주걱’

버스가 다니는 길에서 구불구불 시골 마을길로 접어들고도 한참을 달리자 빨간색 지붕의 시골집 앞에 ‘책’이라고 쓴 정거장 표시가 서 있다. 차도 마음도 멈춰 서게 만드는 평안한 첫 인상이다. 도시생활을 벗어나고 싶었던 주인장 김현숙씨는 13년 전 농사를 짓겠다며 덜컥 강화도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마을 사람들과, 그리고 강화에서 문화활동을 하는 이들과 어울리며 재밌게 세월을 보내다가 4년 전부터는 북스테이 '책방국자와주걱’을 열고 책을 쟁기 삼아 손님들의 마음 농사를 짓고 있다.
“어머니 산 진강산 품에 안겨, 건너편 아버지 산 마니산을 바라보는 시골마을의 기운이 처음부터 너무너무 좋았어요.”

농가주택의 나무기둥을 그대로 살린 '국자와 주걱'의 내부 모습. 새끼로 묶은 메주덩어리도 매달려 있다.

‘책방국자와주걱’이라는 이름은 주인장과 친분이 두터운, 강화도 하면 떠오르는 함민복 시인이 지어줬다. “국자와 주걱은 음식을 누군가와 나누는 도구잖아요. 문화 역시 다른 이들에게 떠 주고 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담은 이름입니다.”

김현숙 사장은 ‘책방 시점’을 연 청년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두 곳의 컬러는 서로 다르다. ‘책방 시점’에 청년들의 세련된 감각이 배어있다면, ‘책방국자와주걱’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정서는 무심한 듯 그윽한 자연스러움이다. 우선 나무 기둥과 들보가 고스란히 드러난 집부터가 시골 외갓집에 온 듯 마음을 풀어준다. 책의 진열도 특별한 원칙이나 규격이 감지되지 않는다. “책 선택의 기준은 단순해요. 그냥 내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거죠. 재밌게도 여기를 찾는 손님들도 제가 고른 책들이 맘에 든다고 해요.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꼬인다고나 할까요(웃음).”

'책방국자와주걱' 뒤뜰을 바라볼 수 있는 창.

이미 강화도는 물론, 작가나 출판인, 예술가들에게 문화 명소로 입소문이 나 신간 출판기념회나 작은 음악회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북스테이를 하는 이들은 마음에 드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밤새 책을 뒤적이다가 꿀잠에 들기도 하고, 별채에 마련된 식당 탁자에서 밤을 지새우며 수다를 떨기도 한단다. 아침에는 주인장이 차려주는 유기농 밥상이 제공된다. 직접 텃밭농사를 짓기도 하고, 이웃들이 이것 저것 들고 오기도 해 건강하고 맛있는 식재료가 늘 풍성하다는 게 김현숙씨의 자랑이다.

책방국자와주걱에는 뚱뚱보 고양이 ‘요리’가 있다. 느긋하고 게으른 표정이지만, 손님들과의 친화력은 100점 만점. 요리를 또 보고 싶어 다시 들르는 손님들도 있다니, 이쯤 되면 영업부장 월급을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주소 :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 428번길 46-27
전화 : 010-2598-3947

작은 출판사들의 참신한 기획 시리즈를 모아놓은 코너.
'책방국자와주걱'의 식당 겸 휴게실로 애용되는 공간.
'책방국자와주걱' 김현숙 주인장(사진 왼쪽)과 함께.
'책방국자와주걱'에서 방문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뚱뚱보 고양이 요리.
'책방국자와주걱'의 이정표 책 정거장.
강화군 양도면 시골마을에 자리한 '책방국자와주걱'. 강화도 전통 ㅁ자 형태의 집이다.


■ 주변 가볼만한 곳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절인 전등사에는 수령이 오래 된 나무들이 많다.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은 전통양식으로 지은 한옥 성당이 아름답다(가까이에 있는 천주교 온수리성당과 혼동하지 말 것). 최근에는 강화 씨사이드리조트를 찾아 루지 썰매를 타고 경사진 트랙을 내달리는 액티비티가 인기다. 분위기 좋은 카페는 강화 전역에 지천이다. 해질녘에는 전망 포인트를 찾아가 강화갯벌을 물들이는 낙조를 감상하는 것도 놓치지 말자.
책방 시점 주인장에게 밥집을 추천해 달랬더니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손두부 전문점 이조시대(032-937-2841)를 소개한다. 손두부버섯전골을 먹어보니 주 요리와 밑반찬 모두 만족스럽다. 역시 음식점 선택은 ‘현지인 추천’이 진리다.

수많은 문화유산과 노거수를 품은 정족산 전등사 경내.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의 새로 지은 예배당 모습.
아름답고 단아한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 한옥예배당.
손두부전문점 '이조시대'의 두부버섯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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