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생태적 핵심지역이지만 위협요소도 높아
시민 참여 ‘열린생태학’에서 답 찾아야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고양신문]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지인을 만나면 무지하게 반가운 법이다. 그런 일이 지난해 장항습지에서 일어났다. 열대나 아열대지방에 주로 살아가는 따오기의 한 종류가 5월 18일에 장항습지 논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이름은 적갈색따오기, 영어 이름은 불그스름한 광택이 나서 glossy ibis라고 한다. 이 새는 주로 동남아시아나 중국 남부, 유럽 동남부와 아프리카, 호주, 북미와 중미 지역 등 주로 남반구나 저위도 부근에 분포하며 중국에서는 국가보호종으로 지정하고 있으니 우리 땅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없는 새였다.

그러나 2018년 4월 중순경에 제주도 한경면에서 처음 발견된 후 이내 사라졌고, 그 후 약 1년 만에 뜻밖에도 고양시 장항습지에서 다시 발견된 것이다. 반갑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제주도에서 잠깐 관찰되었을 때만 해도 길 잃은 새(미조)라고 생각했으나 한반도 중부 이북인 장항습지까지 올라 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한반도에 정착하리라는 기대감마저 품게 된다.

장항습지의 적갈색따오기. <사진제공=최윤주>

하지만 아직 그러한 예측을 하기에는 이르다. 장항습지에 머문 기간은 단 하루였기 때문이다. 최초 이 따오기를 발견한 최윤주씨(한강유역환경청 장항습지방문자센터)는 “그 후 며칠 동안 논 주변에서 흔적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고 했다. 시민모니터링팀도 장항습지 전역을 오가며 관찰했지만 역시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즈음 시작된 모내기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짐작이 갈 따름이다. 그래도 최초 발견된 제주 한경면과 고양 장항습지는 모두 얕은 습초지처럼 논이나 무논이 있고 주변에 나무가 있으며 배후에 물이 드나드는 조간대가 있어 습지와 숲 가장자리를 좋아하는 적갈색따오기에게 안성맞춤이니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적갈색따오기와 같이 기후변화 코드를 읽을 수 있는 생물종이 장항습지에서 얼마나 발견되었을까? 환경부에서 기후변화에 민감한 생물 100종을 국가기후변화지표종으로 선정하였으니 이를 기준으로 보면 작년 한 해 시민생태모니터링을 하면서 장항습지에서 기록된 지표종들은 흰날개해오라기, 제비, 뻐꾸기, 소쩍새, 큰부리까마귀, 꼬마호랑거미, 각시메뚜기 등 18종이었다. 이중에서 작년에만 새롭게 발견된 지표종은 붉은부리찌르레기, 검은이마직박구리, 푸른아시아실잠자리 등 3종이었다. 더불어 장항습지를 포함한 고양시 전역에서는 호수공원의 연분홍실잠자리, 정발산의 동박새, 배다골습지의 북방산개구리 등을 포함해서 34종에 달했다.

흰날개해오라기. <사진=에코코리아>

지난해까지 장항습지에서 기록된 생물종수는 947종이며 이중 과거에 기록되었지만 최근 3년간 관찰되지 않는 종은 20여종에 이른다. 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장항습지와 같이 야생 생물이 집중적으로 서식하는 공간, 흔히 생물다양성이 높은 곳을 생태적 핵심지역(ecological hotspot)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에는 생물다양성의 위협이 높다는 경고성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핵심지역이 과도한 이용이나 개발, 기후변화 등의 위협에 노출될 때 생물다양성이 더욱 크게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비록 생물다양성의 의미에는 생물 종수만이 아니라 유전자나 생태계 수준의 다양함도 포함하고 있지만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척도는 생물종수이므로 한 지역의 생물 종수는 매우 중요한 건강성의 잣대이다.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에 봄비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이런 날씨라면 곧 벚꽃, 개나리, 진달래 소식도 올 것 같다. 이들 봄꽃들이 꽃봉오리를 언제 터뜨릴까, 그리고 예전보다 얼마나 빨라질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뿐만이 아니라 올해 뻐꾸기는 언제 첫 울음을 들려줄까. 두꺼비는 언제 처음 알을 낳으러 나올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 지는 질문들이다. 이에 대한 해답이 시민들의 관찰과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빅데이터에서 나온다면 믿어지겠는가. 기후변화지표종과 같이 우리나라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데이터를 모아서 꽃피는 시기, 새 우는 시기를 관찰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분석하여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이른바 빅테이터를 이용한 생물계절학(Phenology)이다. 같은 방법으로 장항습지의 육화, 외래침입종, 기후변화 등의 난제들도 풀 수 있지 않을까.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턱 낮은 생태학 이른바 ‘열린 생태학’이 대세가 된다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검은이마직박구리. <사진=에코코리아>

 

붉은부리찌르레기. <사진=에코코리아>

 

연분홍실잠자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적갈색따오기.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푸른아시아실잠자리. <사진제공=김은정>

 

정발산의 동박새. <사진=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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