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귀종의 경제칼럼>

[고양신문] 지역화폐는 지역의 구매력과 생산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화폐다. 지역 공동체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기존 법정화폐로는 얻을 수 없는 가치나 효용을 얻기 위해 발행한다. 법정화폐는 국가가 발행하는 것이지만 지역화폐는 지역에 기반을 둔 금융회사나 기업, 민간단체들이 주로 발행한다.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고양페이의 경우 연 매출 10억 원 이하의 6만개 고양 지역 가맹점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지역화폐로서 고양시가 발행주체다. 14세 이상의 고양시 주민이 고양페이라는 체크카드에 충전한 금액이 곧 지역화폐 발행액이 된다. 충전금액에는 6∼10%의 인센티브가 제공되는데,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카드 충전한도는 월 50만원, 연 600만원까지다.

인센티브의 원천은 세금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지역화폐 발행액의 4%를 지원하기로 했다. 중앙정부가 지역화폐 발행을 지원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지역화폐 발행액이 적으면 정부예산을 빼오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발행액을 늘리기 위해 추가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지자체의 예산 부담이 늘어나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이런 제로섬 방식의 지역화폐는 전국적으로 100여 개가 넘는다. 지역화폐로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액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정부의 지원이 종료되는 3년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해외에서도 지역화폐의 성공 사례는 많지 않으나,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자금 융통형이다. 중소기업이 주요 회원이라는 게 특징이다. 스위스 WIR가 대표적인데 민간은행이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저금리로 대출도 해준다. 회원들은 지역화폐로 상호 거래한다. 만성적으로 돈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유용하다.

둘째는 커뮤니케이션형이다. 소비자와 가맹점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미국의 이사카 아워즈(Ithaca Hours)가 대표적 사례인데, 회원은 입회금을 내고 지역화폐를 받는다. 이 화폐는 베이비 시터, 노인 케어, 경락, 상담, 자동차나 집의 수리 등에 이용될 수 있다. 노동을 제공하고 지역화폐를 받을 수도 있다. 슈퍼마켓, 식당, 극장 등에서도 사용되며, 지역화폐를 받은 상점에서는 청소나 재고 정리 등에 이용하기도 한다. 공동체 내부의 신뢰와 결속력이 성공 요인이다.

셋째는 소비촉진형 화폐로서 지역 상품권과 비슷하다. 지역화폐와 법정화폐를 교환할 때 가맹점이 주로 수수료를 부담하고 소비자도 일부 부담한다. 대신 가맹점은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고, 소비자는 가치 있는 상품을 구입한다는 인식 때문에 수수료에 대한 저항이 낮다. 가맹점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만 소비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수수료는 화폐를 발행하고 마케팅을 담당하는 민간단체에게 제공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발행된 킴가우어(Chiemgauer)인데, 이 통화는 3개월마다 2%씩 가치가 떨어지도록 설계됨으로서 화폐의 유통을 촉진한다는 특징도 있다. 고양페이는 지역 소비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의 소비촉진형 지역화폐에 속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지역화폐는 민간 발행기관과 이용 회원(소비자와 가맹점) 모두에게 이득이 되어야 지속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이득은 단순한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얼마나 가치 있는 소비를 할 수 있느냐, 또는 공동체를 결속시킴으로써 화폐경제로 달성할 수 없는 가치를 달성할 수 있느냐를 말한다. 지역화폐 사업이 전시행정으로 비춰지지 않으려면, 다시 말해 더욱 실효성 있는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직접 발행하기보다는 다양한 지역화폐 발행기관을 지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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