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호주의 산불이 5개월 가까이 지속되는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지구시스템과학센터 소장은 호주가 기후난민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발표를 했다. 실제로 이번 화재로 호주는 전체 국토면적의 3분의 1이 화염에 휩싸였고, 10만 명에게 대피명령이 내려졌으며 1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풍을 동반한 폭염과 가뭄 때문에 화재를 진압할 방법이 없다는 점과 호주의 화재가 기후재앙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호주의 산불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서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에게도 흔한 일이 되어버렸는데 참 이상하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아주 오랫동안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는 꽤 예사롭지가 않다.

십년 넘게 농사를 지어오면서 난 올해와 같은 겨울을 겪어본 적이 없다. 깡깡 얼어있어야 할 흙은 연일 질척거리고, 밭에는 정월을 넘긴 지금까지도 배추와 상추와 냉이가 멀쩡하게 살아있다. 한 겨울 텃밭에서 식물들이 파릇파릇 살아있는 건 난생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이다. 오죽하면 지금 감자를 심어도 별 문제없이 싹이 올라올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 광경 앞에서 도시농부들은 모이기만 하면 올 한 해 농사걱정부터 앞세운다. 겨울이 따뜻하면 병해충 피해가 심각해지기 마련인데 영상을 웃도는 겨울은 그 누구도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기에 올 한 해 텃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까닭이다.

꼭 농장이 아니더라도 이상기후로 인한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정월이 지났는데도 가로수에는 나뭇잎들이 잔뜩 매달려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기로 유명한 화천에서는 산천어축제가 처음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벌써 몇 차례에 걸쳐서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어야 할 눈은 힐끗 싸라기로 날리다 말았고, 빙판길은 눈 씻고 찾아봐도 구경조차 쉽지 않다.

이런 기이한 겨울풍경 앞에서 난 자꾸만 재작년의 끔찍했던 폭염이 겹쳐 보인다. 한 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그다지 힘든 줄 모르고 밭일을 해왔던 나는 그 해 여름 내내 오전 열 시만 되면 아차 하는 순간에 억, 소리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냅다 농기구를 버려두고 허겁지겁 집으로 도망을 치곤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해 여름에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기후변화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혹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어디 그 뿐인가, 태풍의 위력도 점점 강력해지고 있고, 가뭄피해도 갈수록 극심해지는 추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다른 위기의식 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눈으로 기후변화를 바라보면 해빙기에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해마다 절기에 맞춰서 농사를 지어왔지만 언제까지 절기에 맞춰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눈앞이 아뜩할 때가 많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이란 유행가의 가사가 생경하게 느껴진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기우가 한 개인의 유별난 호들갑일지도 모르며,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곰곰이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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