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수남 소설가

정수남 소설가. 일산문학학교 대표

[고양신문] 새해가 밝으면서 선거에 대한 열풍이 전국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동안 물밑에서 여의도 입성을 꿈꾸던 예비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각종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출판기념회 등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고양시도 예외는 아니다. 금년은 더구나 선거법 개정 이후 실시되는 첫 선거이다. 그런데 이렇듯 뜨거워지기 시작한 선거판과는 달리 이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선은 아직까지도 미적지근하다. 이는 어쩌면 이합집산은 물론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정치판에 식상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노자는 정치를 일컬어 정자정야(政者正也), 즉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낡은 제도를 쇄신하여 새로움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개혁은 절대 불가결의 것이며, 구습에 물든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하는 정사를 의심스러워하거나 어렵게 여겨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다시 풀이하면 해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정치현실은 어떠한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당리당략에 얽매인 일방적 주장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그에 합당한 구체적 대안과 함께 타협과 합의를 이룰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터인데 과연 그러한가. 20대 국회를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여야가 명분도 뚜렷하지 않은 자신들만의 주장만 반복하다가 아니 되면 단식과 장외투쟁도 불사했던 상처뿐인 국회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에 대한 이유는 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라는 네루의 말을 한 번이라도 기억했다면 이와 같은 극단적 상황이 매일같이 반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당면한 현안들이 금년이라고 해서 갑자기 해결, 또는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은 할 수가 없다. 이는 무엇보다 경직된 남북관계도 그렇거니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리수도 마다하지 않는 미국과의 동맹관계, 그리고 아직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아베 정부와의 외교문제 등, 국제 정세도 그러하며, 청년실업과 저출산, 고령화 문제 등을 안고 산업의 대전환기에 접어든 국내 문제도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이제 이는 전적으로 21대 국회가 안고 가야 할 과제가 되고 말았다. 4.15 선거가 중차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먼저 이를 해결하겠다는 대안부터 유권자들에게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은 아주 크고 높은 것이 아니다. 선호하는 정당도 중요하고, 정치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과 성품, 또 변수가 도출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의지력 등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 제46조에 명시된 국회의원들이 지켜야 할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점이다. 수 십 가지 나열될 게 분명한 공약에 대한 신뢰는 그 다음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와 같이 아주 소소한 것도 지키지 못한 후보들이 당선되어 유권자들을 실망시킨 것 또한 사실인 까닭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들의 대부분은 청렴의 의무나 국익을 우선해야 하는 의무, 직권 남용 금지의 의무보다는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등을 더 누린 셈이다. 그러면서도 매달 의원활동비 2682만원은 꼬박꼬박 지급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정치를 일컬어 생물이라고 부른다. 이는 정치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으로, 작금의 지지 세력이 영원히 자기편일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도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국회의원을 지망하는 후보들은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는 공(功)이 없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한다. 이는 모두 발끝으로 오래 서 있으려는 것과 같다’는 노자의 또 다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유대의 랍비들이 토라를 외우듯이 이를 아침저녁으로 읊조려야 할 것이다.

한 마디 더 주문하자면 왜 유권자들이 정치 현장을 외면하는지 그 이유를 똑바로 인식하고, 낡은 제도를 바로 잡겠다는 각오로 임하되 민심의 목소리를 듣는 귀는 결코 닫지 말라는 것이다. 새로움을 창출하기 위한 그 근원이 국민의 목소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상기하라는 뜻이다.

선거는 축제이다. 그리고 그 축제를 누릴 주인공은 당연히 유권자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굳이 후보들이 그 축제에 참가하고 싶다면 당선인이나 낙선인이나 스스로 정정당당히 겨뤘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비방과 흑색선전은 일체 삼가야 할 일이다. 그럴 때 우리의 선거 풍토는 비로소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게 아니라 누구를 뽑기 위해 투표하는, 진정한 축제가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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