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최창의

최창의 행복한미래교육포럼대표.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

[고양신문]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온나라가 들끓고 있다. 아직까지 질환으로 생명을 잃은 이가 없어 다행이라지만 사회적으로 앓고 있는 증후군이 더 심각해 보인다. 무엇보다 생활의 활력이 떨어지고 사람들 사이 단절의 벽이 높아져서 걱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삶이 위축되거나 침체되지 않도록 순간순간 깨어있으려 노력해야겠다.

내가 요즈음 신종바이러스 증후군에 눌리지 않으려 선택한 것은 책읽기다. 읽을 책들은 내 생활 습관이나 가치관에 도전하는 내용으로 골랐다. 그렇게 붙잡은 책이 『82년생 김지영』과 『90년생이 온다』,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는 제목의 세 권이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권은 익히 들었지만 시간에 쫓겨 미뤄 둔 책이고, 세 번째 책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존경하는 선배 교육자가 보내준 책이다. 이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 사는 꼴과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뜯어보고 되돌아보면서 신종바이러스로 속 시끄러운 날들을 이겨내었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서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그 서사적 구조와 간결한 문체 덕분에 짧은 시간에 읽기를 마쳤다. 주인공 김지영 씨는 60년대생인 내 아내나 나와 20여년 세대 차이가 나는 터라 그 성장 배경이나 문화가 다르긴 했다. 그래도 소설을 읽어가면서 지난날부터 우리 사회와 가정, 학교가 저질러온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마치 지금 그 일을 겪듯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혼인에 따른 남편 집안의 가부장적인 명절 문화가 얼마나 한 여성의 자의식과 존재감을 망가뜨리는지 실감하였다.

『82년생 김지영』은 여성들 삶을 그려낸 픽션이나 르포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소설에 나오는 가족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는 현실과 대비하면서 읽게 된다. 여성으로 내 아내는 지난날 우리집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 집안에서 며느리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곰곰이 되살펴 보게 하였다. 그러고 보면 내 아내는 김지영 씨보다 더 열악한 형편에서 생활하면서도 남성 위주의 집안 분위기를 참아내 왔던 게 사실이다. 더욱이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면 친정보다는 시댁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고 부엌 일로 쉴 때가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우리 집안의 남녀 문화나 명절 풍습도 상당히 달라졌지만, 아내가 만약 이런 소설을 쓴다면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90년생이 온다』는 새로운 세대인 30대 이하 청년들의 특성과 직업 세계를 다각도로 취재하여 들려준 책이다. 평소에 세대 갈등을 느끼거나 이해가 부족한 노·장년층이 읽어봐야 할 권장도서로 손색없겠다. 기억에 남는 내용을 꼽으라면 90년대생은 언어와 인간관계에서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솔직하거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 삶을 중시하고 조직에 희생과 충성을 요구하거나 꼰대노릇 하는 상사를 참아내지 못한다. 헌신성을 최우선에 두고 꼰대 기질이 다분한 나 같은 사람이 직장에서 젊은이들을 만날 때 지침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이 책에서 90년생 세대들의 특성을 일과 생활을 균형되게 추구하는 공무원 선호 현상에서 찾는다. 사실 내가 일하는 연수원에는 해마다 치열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90년대생들 수 백여명이 신규연수에 들어온다. 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동기로 공무원을 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인생 설계를 하고 있는지 대화하곤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젊은 새내기 공무원들의 사고구조를 조금 더 이해하면서 가깝게 다가가기 편하게 되었다.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와 발병하면 약이 없어서 치료할 수 없다고 한다. 몸이 가지고 있는 면역력을 높여서 몸 스스로 치료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에 신종바이러스가 창궐할수록 나는 정신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마지막 남은 책 『하루만 더 살기로 했다』를 펼쳐 읽기로 했다. 이 책은 전직 교사이자 전교조 위원장을 지낸 1948년생 이수호 선생이 나이 70줄에 들어서면서 세상을 좀 더 넓고 깊게 바라보며 쓴 수상집이다. 그는 열렬한 교육노동가로 일해 왔지만 나이 들면서 한없는 반성과 겸허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의 이런 삶의 마디마디를 읽어 내려가면서, 세 권의 책 읽기를 마치기까지 나를 더욱 긴장시키고 단련시켜 다시 반듯하게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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