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러시아·일본 등 6개국 넘나든 재두루미
장항습지에서 새끼와 함께 관측
시민모니터링의 가치와 역할 증명

장항습지에서 관측된 보르쟈 가족.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고양신문]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의 일이다. 미국 위스콘신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두루미재단의 아치볼드박사께서 메일 하나를 전해왔다. 몽골 조류학자인 님바박사가 러시아에서 위성발신기를 달았던 재두루미가 장항습지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재두루미 이름은 보르쟈(Borzya), 2015년생으로 5살이 갓 된, 사람으로 치자면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다리에는 X-17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있으니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보르쟈라는 이름은 러시아 남쪽 몽골 접경에 있는 보르쟈강 습지에서 태어나 붙여진 이름이다. 몽골과 러시아 조류과학자 연합팀은 재두루미 둥지를 찾는데 성공해 새끼의 왼쪽다리에 노랑색과 파란색 가락지를, 오른쪽에는 위성발신기를 부착했다. 이후 보르쟈는 5년 동안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간혹 두어 달씩 신호가 들어오지 않는데 작년에도 지난 9월부터 신호가 없다가 10월말쯤 드디어 한강하구와 DMZ일원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여기서 남북한의 경계를 오가다가 12월 하순경부터 장항습지에서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러시아 보르쟈강가에서 가락지를 부착하고 있는 몽골연구팀. <사진제공=님바 바타바르>

보르쟈는 5년 동안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몽골과 중국, 북한과 한국 그리고 일본까지 6개 국가의 경계를 넘었고, 이 때문에 각국의 과학자들에게는 꽤나 유명세를 탔다. 보르쟈가 태어난 첫해는 부모를 따라 중국 장시성의 포양호에서 겨울을 났다. 그 이듬해에는 일본 가고시마 남쪽 이즈미까지 내려가 월동을 했으며, 세 번째 겨울에는 철원의 민통선안쪽에서 한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말 파주에 도착해 12월 중순 드디어 한강하구 장항습지에 입성한 것이다. 보르쟈가 장항습지에서 신호를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 탐조에 나서서 장항습지 전체를 샅샅이 뒤졌으나 보르쟈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본 이즈미에서 발견된 보르쟈. <사진제공=유코 하라구치>

한동안 보르쟈를 찾지 못한 이유는 장항습지의 무논 잠자리가 관찰지점에서 250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음에도 잠을 자는 재두루미들이 무척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고 조사하려면 해 뜨기 전 철책선 사이 군사작전로에서 조용히 기다려야 했다. 차량은 시동과 라이트를 꺼야 하며, 사람들의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때로는 그 먼 거리에서도 인기척을 느껴 해뜨기 전에 날기 때문이다. 강바람 맞아가며 어둠속에서 가락지를 찬 보르쟈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해를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1월 7일 새벽 드디어 잠자리에서 보르쟈를 만났다. 장장 17일만이었다. 놀랄 일은 하나 더 있었다. 보르쟈가 혼자가 아니었다. 작년까지도 혼자였던 보르쟈가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들의 사진을 몽골로 보내니 님바박사는 그동안 보르쟈를 수컷으로 알고 있었는데 암컷인 것 같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재두루미는 수컷이 암컷보다 커서 가족이 함께 있을 때에 크기로 구별할 수 있다. 이번 시민모니터링팀에 의해 장항습지에서 처음 관찰되었고, 보르쟈가 엄마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시민과학의 쾌거가 아니겠는가.

전 세계 두루미 종류들 중에 유독 재두루미는 번식지를 찾기가 어렵다. 습지 깊숙한 곳에 은밀하게 둥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항공기를 이용해 습지를 지그재그로 촘촘하게 조사를 해야 하며 찾더라도 접근하기 어려워 가락지를 달거나 위성발신기를 부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장항습지에서 겨울을 나는 재두루미들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은 이유였다. 다행히 이번 보르쟈를 통해서 장항습지 재두루미들의 고향은 러시아 남쪽이며 월동지는 매년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동북아 각국이 함께 손잡고 재두루미를 보호해야한다는 당위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장항습지에서 관측된 보르쟈 가족.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지난주에 평창에서는 세계평화포럼이 개최되었다. 여러 가지 주제 중에 환경과 평화라는 주제의 한 세션에서는 국경 없는 새를 통해 남북한의 생태협력을 이루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보르쟈 사례를 발표하면서 남북한 간 조류연구 공동협력을 제안했다. 우선 북한이 한강하구 북한영역을 철새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이후 남북한이 공동으로 람사르습지로 등록한 다음, 람사르습지내에 국제공동연구가 가능한 남북철새연구센터를 이곳에 두자고 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한강하구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강조했다. 역설적이게도 남북한의 평화국면에 한강하구는 늘 생태적 위기가 찾아왔다. 경제적 협력을 골자로 골재채취를 포함한 온갖 개발계획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경색국면이다. 오히려 이때가 더 생태적 이슈를 중심에 놓을 수 있는 적기가 아닐까. 작년에 북한이 람사르협약에 가입했고 금강산생물권보전지역을 지정한 것도 이러한 생태 협력을 원한다는 신호가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구체적인 해답을 구할 때이다.

님바 박사가 속해있는 러시아-몽골 연합 연구팀. <사진제공=님바 바타바르>

 

장항습지를 찾아온 재두루미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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