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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로 시작해서 ‘증인’처럼 진행되다 ‘변호인’처럼 폭발한다!<강도영의 퇴근길 씨네마> '다크 워터스'(2019, 미국)
  • 강도영 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3.13 18:41
  • 호수 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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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영 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고양신문] 언더독의 싸움을 두고 ‘다윗과 골리앗’이란 라벨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겉모습만 보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청소년 다윗이 3m에 육박하는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쓰러뜨리는 이야기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은 언더독의 통쾌한 승리에 방점이 찍혀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골리앗을 대항해 싸우는 다윗의 태도와 기세 그리고 도전하는 모습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

이 과정이 워낙 극적이기 때문에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돼왔다. 2000년에 개봉했던 <에린 브로코비치>(소더버그 감독, 줄리아 로버츠 주연)는 크롬성분이 든 유해물질로 한 마을을 파괴시키는 대기업을 상대하는 에린이 홀로 법정 싸움을 벌여 결국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작년에 개봉한 <퍼스트 리폼드>(폴 슈레이더 감독, 에단 호크 주연)는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과 교회의 유착에 맞서 기독교 본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젊은 목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두 영화 모두 환경을 파괴하는 대기업과 한 개인이 싸우며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다.

우리에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슈퍼히어로 캐릭터인 헐크로 더 익숙한 마크 러팔로는 2016년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를 읽는다. “듀폰 최악의 나이트메어가 된 변호사”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미국의 최고 화학 기업인 듀폰이 독성 폐기 물질을 유출하면서 발생한 사건을 다룬 탐사보도였다. 기사를 읽자마자 마크 러팔로는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기업인 듀폰에 맞서 싸운 롭 빌럿 변호사의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다윗이기도 했고 가상세계의 수퍼히어로가 아닌 우리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일상 히어로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신념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확신 덕분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싸움은 영화화되었다.

영화 <다크 워터스>(2019, 미국)의 한 장면.

1998년 대기업을 변호하던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롭 빌럿은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을 소개받는다.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어느 마을에서 메스꺼움과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장애아가 태어나며 젖소 190여 마리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때부터 롭 빌럿과 듀폰의 기나긴 소송 싸움이 시작된다. 듀폰이라는 대기업이 한 명의 변호사 롭을 무력화시킬 방법은 다양했다. 대기업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의 목을 죄며 말려 죽이는 것이 가장 익숙한 싸움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롭 빌럿은 3년의 조사를 걸쳐 듀폰의 독성 화학 물질을 발견하고 집단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은 10년이 지나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두에게 이 과정은 지겹고 고통스럽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외롭게 대기업과 싸우는 롭 빌럿은 일반 사람보다 능력치가 뛰어나서 이렇게 영웅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이다. 그런 그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이유는 그를 옆에서 지지해주고 믿어주고 도와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윌리엄 윌버포스가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40년간이나 싸울 수 있었던 것은 클래펌이라는 공동체가 그를 뒷받침했기 때문인 것처럼 롭 빌럿에게도 동료 변호사인 톰 터프 그리고 아내 사라가 있었다.

대기업을 상대로 개인이 20년을 버티기에는 엄청난 희생과 의지가 필요하다. 이때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슈퍼히어로의 힘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결국, 지난한 과정을 지나 사건을 맡은지 20여 년이 지난 2017년에 사법부는 듀폰에게 총 8천억의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한다. 언뜻 보면 듀폰이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롭 빌럿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싸움은 지속된다. 영화 끝에 등장하는 판사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You are still here. (당신은 아직도 여기 있군요.)”

소송에서 지고 8천억 원이라는 큰돈을 지급하고도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듀폰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20년이란 세월의 기다림이 무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롭 빌럿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 그는 듀폰 외에도 불법 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한 다른 화학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I am still here.” 상대가 아무리 거대한 골리앗일지라도 물러서지 않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야말로 롭 빌럿이 우리에게 보여준 진짜 수퍼히어로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강도영 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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