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자유농장 주변에는 커다란 황구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다닌다. 녀석들은 꾀죄죄한 몰골로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마을 곳곳을 기웃거리고 다니다가 사람만 나타나면 후다닥 도망을 친다. 털에 윤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한껏 꼬리를 늘어뜨린 채 지치고 피곤한 기색으로 맥없이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보면 에고, 가엾어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마을 물정에 어두운 나는 처음에는 녀석들이 주인 없이 떠도는 개인줄 알았다. 하지만 사정을 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녀석들은 인근 농장에 사는 개들이었다. 마을 사람들 말에 따르면 녀석들의 주인은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꼴로 농장에 나타나선 커다란 깡통에 개밥을 왕창 쏟아놓곤 나 몰라라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먹이가 똑 떨어지고, 한껏 굶주린 녀석들은 이 집 저 집 마당을 남상거리고 다니다가 이 놈의 개, 저리 안 가 하는 불호령에 후다닥 줄행랑을 놓기 일쑤였다. 막상 호통을 쳐서 개를 내쫓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내남없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개를 키우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끌끌 차댔다.

전후사정을 알고 나니 녀석들이 더욱 가여워졌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주인 있는 개를 거둘 수도 없는 노릇, 그저 점점이 멀어져가는 녀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끼 밥이라도 챙겨주고 싶었지만 그 소식이 주인 귀에 들어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가 키우는 생명을 방치하는 사람이라면 네 까짓 게 뭔데 감히 운운해가며 험하게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다.

뭇 생명을 키운다는 건 일방적으로 뭔가를 해주는 게 아니다.

황구의 주인은 개 사료를 왕창 쏟아놓고 자기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자기가 키우는 개를 위한다면 책임 이전에 감정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건 애완동물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식물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텃밭에서 농사를 짓다보면 작물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화학농약을 치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화학비료를 주고, 한 여름 땡볕 아래서 물을 흠뻑 주면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작물을 돌보는지 한껏 자랑을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이 키우는 작물과 교감을 나눈다면 그런 일은 차마 할 수가 없다. 작물이 원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물은 한 여름의 무더위를 견디기 위해 몸속에 있는 수분을 힘겹게 내보낸다. 그런데 주인이라는 사람이 무턱대고 다가와서 어이쿠, 목 말랐구나 하고 물을 뿌려대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그 모든 걸 사랑이라고 믿는다면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이런 일들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흔하게 반복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공감능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도 공감능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알 수는 없지만 공감능력을 잃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면 우리는 한 세월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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