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 칼럼 <발랑까진>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대표.

[고양신문] 2019년 4월 11일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날이다.
나는 내 몸을 ‘소중한 것’이라고 배웠다. 월경을 처음 시작한 날 엄마는 생리대 가는 법을 알려주며, “이제 여자가 되었으니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야 된다”고 했다. 그때부터 내 몸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처음 착용한 브래지어는 숨통을 조였고, 교복 치마를 입게 되자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 놀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몸은 사회의 기준과 불화했다. 남성 청소년의 2차 성징이 성적 주체로 자신을 확립하는 일이라면, 여성 청소년의 2차 성징은 성적 대상화를 경험하고, 남성 중심 사회에 자신의 몸을 맞추는 일이었다.

청소년기의 나는 때때로 섹스를 했다. ‘걸레’ 혹은 ‘발랑 까진 년’이라는 낙인이 뒤따랐고, 때로는 성병, 임신 등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나아가, 월경을 공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학교에서 월경공결제나 월경용품 보편지급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이어트나 꾸밈노동을 하지 않는 나는 ‘추녀’가 되었다. 내 몸을 두고 오가는 수많은 질타 속에서, 나는 내 몸이 어떻게 ‘소중해’지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을 직면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페미니스트가 된 후에야, 내 몸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2016년 가을, 광화문 일대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검은 시위가 시작되었다. 여성들은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고 외치며, 여성의 몸을 국가 경제를 위한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던 국가를 규탄했다. 작년 4월 11일, 마침내, 수없이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 끝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다.

낙태죄 폐지까지의 투쟁을 지켜보며, 내 몸을 둘러싼 사회적 압력을 다시금 확인했다. 절망을 이기며, 나의 몸은 나의 것이며, 무수한 이들의 다양한 몸이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싹텄다. 작년 12월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을 위한 조례가 제정됐다. 월경용품 보편지급은 우리 사회의 월경을 터부시하는 문화를 거부하고, 청소년의 성과 재생산권을 공적 영역에서 보장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서울시를 넘어, 전국적으로 모든 생리하는 시민에게 월경용품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낙태죄 폐지’를 거리에서 외치고, ‘월경권 보장’을 서울시의회에 요구하고 난 후에야, 내 몸이 소중해졌다. 세상이 제시한 규격과 맞지 않는 내 몸을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월경통을 겪는 내 몸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미움이 잦아들었다. 사회적으로는 내 몸이 '가임기 여성'으로만 여겨지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내 몸을 '순결'한 상태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쓰며 새롭게 마주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1년 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의 집회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사진제공=양지혜>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많은 여성들이 싸워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쟁취해냈지만, 정부는 낙태죄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임신중절의 접근성은 여전히 열악하다. 오랜 시간, 낙태가 금기되었던 문화에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임신중절을 위한 정보 제공 및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청소년의 경우, 여전히 임신중절을 위해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청소년의 성이 터부시되는 사회에서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청소년의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임신중절 사유를 제한하고, '적절한 임신중절'을 판가름하려는 시도를 그만둬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발의된 낙태죄 대체 법안에는 여성이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증명해야 임신중절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안전한 임신중절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적 기준에 맞춰 당사자가 자신을 증명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임신중절 전후로 당사자가 겪게 될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다.

변화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2020년 총선에서 여성 청소년의 몸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싸우는 여성들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었던 작년의 오늘을 기억하고자 한다. 싸우는 이들이 세상을 바꿀 것임을 믿는다. 역동하고 변화하는, 끊임없이 새로이 쓰이는 내 몸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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