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 칼럼>

백장현 한신대학교 초빙교수

제21대 총선 개표방송을 보면서 1972년 서독 연방 총선거에서의 기민당 참패를 떠올렸다. 주지하다시피 1990년 독일의 통일은 20년 이상 계속된 동서독 간 교류·협력의 결과였다. 서독 정부의 일관된 통일정책 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82년 사민당에서 기민당으로의 정권 교체 후 헬무트 콜 총리가 전임 정부의 정책을 계승했기 때문이었고, 그 배경에는 기민당의 1972년 총선거 참패가 자리잡고 있다.

서독 기민당 총선 참패의 교훈

전후 서독은 아데나워 총리의 기민당이 오랜 기간 독주를 계속하다 69년 사민당과 자민당의 연정 합의로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로 정권교체가 된다. 브란트 정부는 연정에 성공해 집권했지만 국회에서의 의석 부족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다 급기야 불신임 결의를 받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단 2표차로 부결됨으로써 간신히 붕괴를 면했지만 브란트 내각은 정국 혼란을 견디지 못해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르게 되었다. 동독과의 교류·협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동서독 기본조약’의 조인 여부와 브란트 정부의 동방정책을 둘러싼 공방으로 치러진 72년의 총선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기민당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전후 처음으로 보수계열의 기민·기사연이 진보계열의 사민당에게 의석수에서 8석이나 뒤지고 자민당까지 합치면 50석이나 뒤지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 선거는 투표율이 91.1%에 이르러 역대 독일 선거 중 최고를 기록할 만큼 치열하였다.

기민당은 선거 참패 후 라이너 바르첼 당수 등 모든 지도부가 사퇴하고 당권을 40대 초반의 젊은 정치인 헬무트 콜에게 넘겨주게 된다. 당수가 된 콜은 10년의 절치부심 끝에 82년에야 집권하게 되는데 당을 환골탈태시켰다. 아데나워 총리 이후 기민당의 기본정책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동독과 교류하는 나라와는 단교도 불사하는 것이었지만, 콜은 총선에서의 민의를 수용해 정책을 유연하게 끌고나갔다. 집권 후 전임 정부의 동방정책을 폐기하고 동독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라는 당내 강경파들의 압박을 물리치고 동독과의 교류·협력 정책을 지속시켰던 것도 72년 총선에서의 쓰라린 교훈 때문이었다. 콜 총리는 사민당 정부의 정책 중 장점은 과감하게 계승해 동독과의 교류·협력을 지속시켰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90년 독일 통일이다. 콜은 통일 후 무려 8년을 더 집권함으로써 통일독일의 주춧돌을 놓아 성공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보수정당의 참패로 끝난 21대 총선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참패하였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계열의 정당이 이토록 크게 패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총 300석의 의석 중 더불어민주당에게 180석을 내주고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차지해 겨우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는 정도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왜 이토록 역대급 참패를 했을까? 코로나 사태 속에서 치른 예외적 선거였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후유증을 치유하지도 못한 채 치른 선거였으니 그랬다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 성찰이 필요할 듯 싶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해방 후 60여년 집권함으로써 산업화에 공을 세웠지만 분단체제 하에서 반공(反共)과 친미(親美)에 안주해 세상 변화를 등한시하였다. 국가적 재난 상황인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미래한국당과 보수언론들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명칭을 고집스럽게 사용하며 국민들의 중국 혐오 정서에 편승했다. 누가 봐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초기 확산에는 신천지 교회의 책임이 결정적인데, 보수 세력들은 교회를 두둔하며 문재인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중국인 입국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데 골몰하지 않았던가. 제1야당이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처지를 도외시하고 최대의 무역상대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라고 정치공세를 편 것이다. 안보면에서 동맹국 미국의 전략적 가치가 중요하기에 친미를 할 수밖에 없다면, 경제면에서 중국의 비중이 크니 친중을 하자고 주장하는 게 국익을 중시하는 보수파들이 취할 태도가 아닌가?

또한 미래한국당은 선거전에서 평양회담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맺은 군사협약을 파기하라고 압박하고, ‘북핵 먼저 폐기’를 주장하였다. 북핵을 폐기하고 군비 경쟁을 줄여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처지에서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50배 이상의 경제력 격차 속에서 더 이상 재래식 군비경쟁을 할 수 없는 북한 입장에서 억지력 확보를 위해 간난신고 끝에 개발한 핵무기를 아무 대가없이 그냥 폐기하라면 북한 당국이 순순히 따를까?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폐기하게 하려면 체제 유지를 위해 부심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입장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북한과 아무런 대화 노력도 없이 그냥 목소리만 높이며 한반도의 긴장만 고조시키는 게 책임있는 정치세력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보수세력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세상은 변화했다. 나라 안도 바뀌고 밖도 바뀌었다. 반공과 친미 일변도로만 국가 운영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경제력에서 한국의 50분의 1도 안 되는 나라, 3대째 권력세습으로 봉건적 왕조 국가에 머물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반공을 외치며 ‘적대적 공생관계’를 지속하려는 행태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안보에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경제에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절실한 환경에서 친미 일변도의 전략으로는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하나’라고 외쳤던 지구촌 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국경을 봉쇄하고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을 차별하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주는 교훈은 인간의 삶은 민족국가를 단위로 이루어지며, 세계화 · 지구촌 사회 건설의 이상도 민족국가들의 연대와 협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 내 보수세력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자신들의 입지 확보를 위해서, 또 한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뤄 민족국가 수립이라는 150년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미래통합당의 분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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