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작년 가을부터 올 봄까지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은 자유농장 조성공사를 하면서 내심 이런저런 계획을 많이 세웠었다. 지난 몇 년간 농장을 운영하면서 늘 해왔던 방식에서 탈피해 작가와 교사들이 많은 자유농장의 특성을 살려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농사를 매개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다양한 실험을 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공론의 장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옴짝달싹 못하게 발이 묶이고 말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모아서 무엇을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리고, 개인텃밭을 분양받은 회원들은 한껏 조심스러운 태도로 마스크를 쓴 채 멀찍이 거리를 두고서 텃밭을 일군다. 예년 같으면 다 함께 모여서 점심을 먹고 막걸리 잔을 기울여가며 참으로 신명나게 농사를 짓고 있을 텐데 올해에는 조근조근 담소조차 나누기가 쉽지 않다.

봄볕은 따스하고 농장주변엔 온갖 꽃들이 만개했는데 사람들이 후다닥 할 일을 마치고 서둘러 농장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이 봄이 참으로 잔인하게 느껴진다. 왁자지껄한 활기가 넘쳐나야 할 농장에서 홀로 정적에 휩싸인 농장을 지키며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보면 하루가 고독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사태가 언제쯤 진정이 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혹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오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 함께 모여서 어깨를 겯고 환하게 웃으며 농사를 지을 수 있으려나 생각도 해보지만 지금 추세로 보면 그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분리된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 코라나19 치료제가 하루 속히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그 자체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예감에 흠칫흠칫 놀라기도 하는데 그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과학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왔지만 어쩌면 그곳에는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소설가 정화진은 「슬픈 노벨상」에서 과학문명의 역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지 간곡히 호소하기도 했는데, 현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그 목소리가 꽤 아프게 다가온다.

과학문명은 분명 현제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우리는 과학문명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학문명은 결코 만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과학이 왜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없는지는 그간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부단히 몸으로 겪으며 깨달아왔다. 자연을 죽이는 석유화학농법은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반면 우리는 자연을 섬기는 생태농업에서 지속가능한 삶의 해답을 찾아낼 수도 있다. 흔히 생태농업은 비과학적이며 생산성이 떨어지는 비효율적 농법이라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편견 없이 들여다보면 생태농업에는 수많은 과학이 존재한다.

문제는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과학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과학문명은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이끌 수도 있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간 과학문명에 대해 가져왔던 맹목적 믿음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원적 힘은 과학문명에 있지 않고 우리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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