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총선이 끝났다. 유시민의 소망(?)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가 163석, 비례 17석을 더해 180석을 차지했다. 공룡여당이 탄생된 것이다. 그에 비해 미래통합당은 가까스로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조금 넘겼다. 민주당의 대승과 통합당의 완패다. 대승과 완패라지만 두 공룡 여당과 야당은 그대로 1, 2위를 차지한 채 국회로 입성하게 되었다. 진보정당은?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겨우 1석을 지켜냈다. 무소속 당선자 5명은 대부분 민주당과 통합당 계열의 사람들이니 진보를 자임하는 후보는 심상정이 아니었다면 전멸할 뻔 했다. 심상정의 승리도 겨우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 하며 지켜낸 것이었다. 블루와 핑크가 전국을 물들였고 노란점 하나 박혀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이대로 괜찮은가?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게는 승리를, 통합당에게는 패배를 안겨줬지만, 정당 역사로 치면 비극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거대양당체계가 의석을 독식하는 것을 막고 유권자의 표심을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합의했지만 그나마도 이리저리 수선하여 본래의 취지를 약화시켰고, 그 비례대표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거대여야 양당이 창당함으로 무력화시켰다. 소수정당의 살 길이 이미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의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중당이나 녹색당, 노동당과 같은 소수 정당은 아무리 노력해도 1석조차 얻기 어려운 정치지형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대로 괜찮은가?

민주당의 보호 아래서만 목숨은 연명하는 것이 건강한 것인가? 거대 양당을 넘어서는 젊은 정치, 새로운 정치, 급진적 정치, 미래 정치의 길은 이대로 막혀도 좋은 것인가?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래도 박근혜의 낡은 정치보다야 문재인의 정치가 좋은 것 아닌가? 물론이다. 좋고말고. 얼씨구 좋다! 몇 백 번이고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정치가 거기서 멈추는 것이라면 나는 박수 대신 주먹을 들 것이다. 분명 민주당 안에서도 선거제도가 이대로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나쁜 부모 밑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자식이 살 길이라면, 좋은 부모 밑에서는 계속 있어도 좋은가? 반대의 정치세력을 물어뜯는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거대정당보다야, 아기공룡 둘리의 어머니 같은 초식공룡 아파토사우루스 같은 거대정당이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거대공룡만 사는 것이 아니다. 작은 공룡도 있고, 심지어는 다람쥐나 토끼들과 같은 동물들도 공생한다. 이들이 모두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공생의 룰이 있어야 하고, 정치 영역에서도 공생의 정치적 틀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 미래를 상상하는 소수 정당들도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공룡이 지배하는 시대는 영원하지 않았다. 지금은 거대 공룡 두 마리가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 둘만이 생명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공룡들이 소멸하더라도 작고 소중한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유연한 정치 시스템을 구상해야 한다. 작고 소중한 진보정당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는 정치역사는 건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21대 총선이 끝나고 기자회견 자리에서 보았던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눈물은 심상정의 눈물만은 아니다. 선거운동기간 동안 힘겨운 활동을 했던 소수 정당 후보와 운동원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지지했던 수많은 유권자들의 땀과 눈물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그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자. 다들 정말 수고했다. 들판의 수많은 꽃들이 제각기 색깔과 향기를 뽐내듯이, 그들의 색깔과 향기도 멀리 퍼져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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