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권우

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일찌감치 수잔 손탁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일반적으로 질병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은유로 이해하는 방식을 지적하면서, 그 왜곡된 이미지가 몰고 온 낙인효과를 예리하게 분석한 바 있다. 결핵과 암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은유를 보면 손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핵하면 낭만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 병은 문인과 예술가의 병이며, 유럽의 경우 습한 기후를 피해 태양을 찾아 떠나는 보헤미안의 병이었다. 이런 은유가 자리잡은 이유는 단순하다. 결핵은 신체기관의 위계에서 위쪽의 정화된 기관에서 주로 발생하기에 정신적 정화나 영혼의 질병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고뇌와 열정으로 자신을 소모한다는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천한 육체를 분해해 인격을 영묘하게 만들어 주며 의식을 확장시켜” 준단다. 반면, 암은 부끄러운 신체기관, 그러니까 자궁, 대장, 전립선, 유방 등에 퍼지는지라 더럽고 감추어야 할 질병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암은 대체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걸린다는 편견 탓에, 결핵과 정반대로, 냉담하고 의기소침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도 덧씌워졌다.

암적 존재라는 말이 있다. 표준국어사전을 보면 “술이 기억력과 사고력의 지속에는 암적 존재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우리들에게 추악한 암적인 존재일 뿐이다”라는 예문이 실려 있다. 새삼 설명할 필요 없이 반드시 척결해야 할 적대적인 그 무엇이란 뜻으로 널리 쓰인다. 이런 은유는 암의 특성에서 비롯했다. 양성종양은 사마귀 정도의 크기로 자라면 멈추는 데, 암은 계속 자라나 생명을 위협한다. 그러니, 암은 지금 당장 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과(後果)가 있을 거란 암시를 준다.

그런데 이 말을 이제 쓰지 않아도 될 듯싶다. 불현듯 대체어가 떠오른 탓이다. 정말 사회에 해악이 되는 개인이나 세력을 일컬을 때 ‘바이러스적 존재’라 해야 하지 않겠냐 싶다. 인터넷을 뒤적여 보았더니 “바이러스(Virus)는 다른 유기체의 살아 있는 세포만을 숙주로 삼아 생명 활동을 하는 감염원”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코로나19가 박쥐에서 사향고향이를 거쳐 인간에게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이유를 알겠다.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수많은 돌연변이를 만든다는 점이다. 백신 개발이 어려운 이유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류가 겪은 희생은 엄청났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으로는 2000~5000만 명, 2009년의 신종플루로는 2~3만 명, 홍콩 독감은 75~100만 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 탓에 4월 17일까지 전세계에서 15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바이러스적 존재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이 놀라운 감염력 때문이다. 암은 감염되지 않는다. 암을 앓는다는 것은 그 고통을 오로지 홀로 겪는다는 말이다. 의료인이 방호복을 입고 암 치료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탈모, 구토, 설사, 빈혈, 통증 따위로 고통 받는 모습을 자주 보았을 터다. 당연히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고통을 줄일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감내하고 이겨내는 것은 오로지 환자 자신이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감염된다. 특히 코로나19는 유례없이 감염력이 강한 걸로 나타났다. 아프기만 해도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마련이다. 나와 가까운 사이인지라 오히려 감염이 잘 되었다면 이보다 더 민망한 일은 없다. 더욱이 위험을 알면서도 기꺼이 치료에 나선 의료진마저 감염되는 사례를 보면 바이러스는, 다시 은유로 표현하자면, 악독하기 짝이 없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과연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내가 겪는 고통을 혼자 감내하고 인내하며 이겨내는 인물인지, 아니면 내가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세상 사람이 다 알아야 하는 듯이 떠벌이며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인물인지.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최소한 암적 존재라도 되면 성숙한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니, 부정적인 상황을 은유할 적에 앞으로는 바이러스적 존재라고 쓰자. 암적 존재는 그보다 훨씬 선량하니 말이다. 물론 손탁이 보면, 이 표현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고통 받는 분들을 힘들게 한다고 혼내겠지만, ‘방콕’에 지쳐 웃자고 한 이야기니 널리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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