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인터뷰

코로나 이후 첫 개봉하는 한국영화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시절 이야기
기획, 제작, 감독, 주연 모두 '고양시민'

 

[고양신문] ‘우리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었던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화 <저 산 너머>가 4월 30일 개봉을 앞두고 화제다. 추기경의 이야기, 어린 배우의 연기, 향수를 자아내는 목가적 풍경 등 코로나 사태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영화 <저 산 너머>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시절, 가족의 사랑 속에서 마음밭에 특별한 씨앗을 키워간 꿈 많은 7살 소년 수환의 이야기가 담긴 가족영화다. 종교의 벽을 넘어 사랑을 실천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룬 첫 극영화이며 『오세암』을 쓴 정채봉 작가의 『바보 별님』과 이를 새롭게 꾸민 『저 산 너머』를 원작으로 했다.

 

영화 <저 산 너머>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온픽쳐스]

이성호 대표, 오직 한 영화 위한 제작사 설립

이 영화가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제작자, 투자자, 감독, 주연배우가 고양시민이라 ‘고양시 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다는 점이다.

제작자 이성호 씨는 2015년 본지 기획기사 ‘부부이야기’에 소개된 카페 마실 대표, 최종태 감독은 영화 <해로>로 2012년 49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24년차 고양시민, 투자자는 장항동에 소재한 아이디앤플래닝그룹의 남상원 회장이다. 주인공 오디션에서 26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이경훈 군도 뽑고 보니 고양시 시민이었다. 고양시 영화답게 고양시에서도 약간의 도움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라페스타의 작은 카페에서 만난 최종태 감독은 “영화제작에서 개봉까지 모든 것이 내 의지가 아닌, 인연에 의해서, 어떤 다른 뜻에 의해서 흘러간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인연의 보따리를 풀어본다.

영화 <저 산 너머>의 이성호 제작자(왼쪽)와 최종태 감독. 그저 상상속으로 꿈꿨던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최종태 감독은 “제작에서 개봉까지 예상치 못한 뜻에 의해 흘렀다”면서 투자자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과 출연배우들, 도움을 주신 모든 고양시민에게 감사를 전했다.

김대중 평화콘서트 인연으로 함께 꾼 꿈

최종태 감독이 이 영화를 구상한 것은 8~9년 전쯤이지만 구상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 마음속 한구석에 접어두고 있었다. 2018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아 일산문화공원에서 열렸던 고양평화콘서트 김대중 평화음악제의 총감독을 맡아 이성호 대표와 작업하면서 저 구석에 있던 작품이 떠올랐다. 감독의 ‘마음밭’에 심겨졌던 영화의 씨앗이 싹 트려는 순간이었다.

“2019년 김 추기경 선종 10주기에 맞춰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는 최 감독. 영화를 직접 제작한 경험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은 오로지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리온픽쳐스를 설립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템은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내가 너무 안일했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투자를 받기 위해 주요배우 캐스팅을 해야 하는데 이 역시 녹록지 않았다. 대학 후배인 봉준호 감독이 이항나 배우를 추천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연기 잘한다고 생각하던 배우라 반가웠다.

영화 <저 산 너머>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온픽쳐스]

이항나 배우는 무교인데 어느 날 가족들과 명동을 갔다가 불 켜진 성당이 예뻐서 이끌리듯 들어가 기도를 하게 되었단다. 최 감독은 “그 다음날 우리한테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소름이 돋았다”며 “이항나 배우는 이성호 대표와 나를 보고 살짝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영화가 되겠냐, 그러면서도 수락을 해줬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고 말한다. 이런 인연으로 추기경의 어머니 역에 이항나 배우를 캐스팅하게 됐다.

연세대 신학과 3인방이었던 인연으로 안내상 배우가 추기경의 아버지 역을 맡았고, 우현 배우도 우정출연을 결정해주었다. 고양시민인 강신일 배우는 이성호 대표와의 친분으로 윤 신부 역을 맡았다.

“제작 경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을 소개 받았으니 배우들이 대부분 거절했는데, 친분 때문이든 불쌍해 보여서든 수락해준 배우들이 대단한 것”이라며 최 감독은 진심으로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저 산 너머>의 촬영 현장 모습. [사진제공=최종태 감독]

투자자 남상원 회장 등 제작 감독 출연까지 모두 고양사람

주요배우는 섭외했고, 이제는 돈이 문제였다. 답답하던 차에 평소 영화 제작을 응원하던 서울대교구의 유경촌 주교가 ‘주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도와주시니 힘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주교님의 문자에서 투자금이 나오지는 않지만(웃음) 마음으로는 응원이 되었다”는 최 감독. 그로부터 며칠 후 친분을 쌓고 지내던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가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을 소개했다.
“함께 술을 한잔 하고 책을 드렸습니다. 이런 내용이니 보시라고. 토요일에 만났는데 다음날 연락이 왔습니다.”

남상원 회장은 불교신자였지만 “이 영화를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흔쾌히 투자를 결정했다. 천주교 신자 셋(이성호, 최종태, 백장현)과 불교 신자 하나(남상원)가 만난 네 명의 고양시민이 뭉쳐서 드디어 영화제작은 현실이 되었다.

10억 원으로 예상했던 제작비가 20억 원으로 늘어나고 배급 마케팅 비용까지 총 40억 원이 필요해지는 상황에서도 남 회장은 흔쾌히 자금을 댔다.
최 감독은 “그는 선의의 투자자다. 이익을 떠나 투자를 해준 거니까 투자금액 안에서 제작하고자 사전준비를 치밀하게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한다.

영화 <저 산 너머>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온픽쳐스]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덕분에’ 화제작 개봉

당초 김수환 추기경 11주기에 맞춰 개봉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제작 일정이 맞지 않았다. 블록버스터 영화 사이에서 경쟁이나 되겠나, 하고 비수기에 개봉하려고 미뤘는데 코로나 사태로 모든 영화의 개봉이 연기됐다. 6월 이후에는 더 힘들겠다 싶었는데, 단독투자자 남상원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 ‘4월 30일에 개봉하자!’

“사업하는 분이라 탑다운 방식으로 딱 결정을 내리더라. 4월 30일은 부처님 오신 날인데 마침 봉축행사가 한 달 연기되면서 부처님도 양보해주셨다고들 했다”는 최 감독.

코로나로 최악의 상황을 만난 극장가에서는 영화 개봉을 반겼다. 최 감독은 “CGV에서 감사받으며 개봉하다니 상상이나 해봤겠냐”며 이 영화는 전국의 많은 개봉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저 산 너머>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온픽쳐스]

김달수 도의원, 백장현 교수… 지역사람들도 출연

영화 <저 산 너머>에 옹기장수 역으로 출연한 김달수 경기도의원. [사진제공=김달수]

영화에는 김달수 경기도의원과 백장현 교수도 깜짝 등장한다. 은근히 영화배우의 꿈을 품고 있는 김달수 의원은 옹기장수로 등장하고,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큰 인연을 만들어 준 백 교수는 순사를 지고 다니는 장터 지게꾼으로 등장한다. “일본 순사가 장터 순시할 때 지게꾼의 지게에 앉아 거만하게 둘러보는 사진을 본 적이 있어서 표현해봤다”는 최 감독.

촬영장은 아이들이 많아서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투자자인 남 회장은 촬영장을 자주 찾으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주는 좋은 할아버지’가 되었고, 최 감독도 “늦둥이 본 것처럼 마냥 귀여워 무릎에 앉히고 촬영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따스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서일까, 촬영장 분위기도 늘 푸근했다. 이런 분위기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한다.

이 영화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이슈인 표준근로계약을 준수하며 제작됐다. 최 감독은 “평소 옳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잘 지켰다. 쉴 때 쉬고 일요일도 쉬고 찍으니까 더 좋았다”며 “현장은 체력전이다. 감독으로서 쉬는 짬이 생기니까 생각하고 구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로케이션 장면도 한번 더 찾아볼 여유가 생겼고 모두들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저 산 너머>의 촬영 현장 모습. [사진제공=최종태 감독]

주인공 이경훈 군 어리지만 당찬 연기력

영화의 원작이 된 정채봉 작가의 책 『저 산 너머』(리온북스).

추기경 어린 시절을 연기한 이경훈(당시 10살) 군은 오디션 첫날 세 번째로 들어온 후보였다. “첫인상이 김수환 추기경처럼 인중이 좀 길고, 어리지만 연기도 제법해서”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다. 최 감독은 “경훈이는 실제 촬영에서도 힘 있게 연기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 느껴졌다”며 “이 역할을 하려고 태어난 아이 같다”고 극찬했다.

시사회 날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보고 엉엉 소리 내어 울던 아이. 경훈이는 ‘그동안 고생한 게 생각나서, 영화가 너무 좋아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서’라고 울음의 이유를 표현한 야무진 연기자다. “어른 연기자들이 긴장할 정도로 거침없이 연기했다. 기대해도 좋다”는 감독의 평이다.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제작진은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못다한 일을 밝혀내기도 했다. 바로 추기경의 할아버지 이야기다.
예쁜 자연풍경을 많이 담고 싶었던 최 감독은 세트장 지을 장소를 물색하다가 남 회장이 추천한 충남 논산에서 마땅한 장소를 발견해 세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6km 떨어진 곳에 추기경의 할아버지가 살던 마을이 있었다.

광산 김씨인 김 추기경 아버지의 고향이 논산이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천주교 병인박해로 순교한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최 감독은 “김 추기경 할아버지 김익현은 판서까지 지냈던 집안 출신”이라며 “광산 김씨 문중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족보를 정리하고 할아버지 성함을 정확히 알려왔다”고 했다. 이 영화에서는 송창의 배우가 김익현의 역할을 맡았다. 논산에서 촬영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을 알게 되었고, 상상을 조금 보태서 영화에 담았다고 한다.

 

각박한 세상 위로하는 어린 수환의 따뜻한 메시지

<저 산 너머>를 연출한 최종태 감독이 라페스타의 한 카페에서 고양신문 기자와 만나 영화 제작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줬다.

한 사람의 마음 밭에 심겨졌던 소망은 이처럼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로 완성됐다. 개봉을 앞둔 최종태 감독의 바람을 들어보자

“이 작품을 통해서 각박한 산업사회에 살면서 잊어버리고 살아온, 인간의 존엄성, 동심, 영성, 자연, 어머니의 사랑, 이런 것들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인류에게 반성의 메시지를 전한 코로나 사태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인류적 재난 상황을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개봉하는 첫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며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저 산 너머>의 촬영 현장 모습. [사진제공=최종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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