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해오라기·백로 번식지 거의 사라져
인간-자연 ‘생태적 거리두기’ 실천해야

도래울 숲 해오라기 둥지.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고양신문] 바야흐로 번식의 계절이다. 장항습지에도 얼마 전부터 뻐꾸기와 꾀꼬리가 울고 노래 소리 청아한 명금류들이 곳곳에 둥지자리를 보러 다닌다. 우리 집 지붕아래에서는 딱새와 참새들이 요란하고 창밖 나무 위에서는 멧비둘기들 암수가 구애춤을 추며 리듬을 탄다. 근처 정발산에는 밤마다 소쩍새가 숨넘어갈 듯 짝을 불러 애달프다.

해마다 이맘때면 장항습지에서 번식하던 해오라기 번식지 생각에 맘이 편치 않다. 2007년 늦봄까지 장항습지 한가운데 버드나무숲에는 해오라기 수백쌍이 번식했었다. 해오라기는 덩치가 중대백로나 왜가리보다 작고 예민해서 좀처럼 둥지 보기가 힘들다. 주로 백로나 왜가리들 둥지 사이에 은밀하게 짓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장항습지는 해오라기둥지들로만 이루어진 집단번식지가 있었다. 드문 일이었다. 아마도 철책 안이 포식자의 위협도 적고 드넓은 습초지가 있어 새끼 키우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인 듯했다. 눈이 밝고 사냥술이 좋아 물고기 사냥을 곧 잘 했고 몸짓도 날렵한데다 먹이터가 코앞에 있으니 먹이 문제는 최소한 없을 것이니 버드나무숲이 번식지로는 최적이라 생각했다.

 

해오라기 새끼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해오라기 번식생태를 연구하던 중 ‘엽기적인’ 장면이 일어난 것이다. 한 둥지 안에 있던 두 마리 새끼 중에 덩치가 조금 더 큰 새끼가 동생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동종포식(카니발리즘)으로 환경조건이 나빠지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환경이 나빠진 것인가 의심이 되었다. 그 후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는 자연의 섭리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오라기와 같은 새들은 한 둥지에 알을 2개(이를 한배새끼수라고 한다)를 놓고, 이중 더 크고 강한 새끼가 약한 동생을 포식하는 동기살해(siblingcide) 전략을 쓴다. 좀 더 강한 새끼에게 먹이를 집중해서 생존율을 높이려는 어미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생태계 내에 먹이자원은 제한되어 있고 어미가 자원을 공급하는 능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해오라기에게는 오래된 진화의 결과인 것이다.

해오라기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인간에게 떠밀려 사라져간 둥지들

이런 해오라기의 번식전략은 인간의 눈에서 보면 일견 잔인해 보이지만 실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자연의 교과서로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만 같았던 해오라기들은 그러나 2008년 이후 사라져 버렸다. 킨텍스 IC가 해오라기번식지 바로 앞까지 밀고 들어와서 소음과 진동과 오염물질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관조명을 한다고 빛까지 비추니 예민한 해오라기들이 견딜 재간이 있었겠는가. 지금이라도 킨텍스 IC의 경관조명을 끄고 방음벽을 설치하여 장항습지에 해오라기들이 신접살림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둥지를 짓는 중대백로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고양시의 집단번식지에 대한 안타까운 일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행주산성 강 쪽 사면에 자리 잡았던 백로번식지는 행주역사공원과 고양시정연수원을 짓는다고 숲을 밀고 들어오면서 사라져 버렸다. 벽제천변에 있던 백로번식지는 사유지라는 이유로 벌목되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이들의 번식지가 쉽게 파괴되는 이유는 그들의 번식습성에 있다. 백로나 왜가리들은 숲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부에서 집단적으로 번식하는 가장자리종(edge species)이다. 그런 곳은 주로 햇빛을 좋아하는 나무들, 소위 양수림이 자리 잡으며 소나무숲이 발달한다. 소나무숲에 백로들이 번식하는 이유는 이러한 생태적 지위가 같기 때문이다. 그런 숲 가장자리에는 논이나 하천, 습초지가 있으니 먹이터가 가깝다. 문제는 이런 먹이터가 대부분 인간의 경제생활이 집중되거나 개발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영역과 겹쳐 먹이터가 사라지며 이들의 집단번식지는 쉬이 망가지는 매우 취약한 생태계이다.

해오라기 둥지 속 두 마리 새끼 <사진제공=에코코리아>


13년 만에 다시 만난 해오라기 둥지

그렇게 고양시에 백로번식지가 모두 사라졌다. 작년까지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해 우연히 도래울 숲 근처를 지나는데 백로들이 소나무숲에 하얗게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뛸 듯이 기뻐 바로 조사를 해보았다. 이미 둥지를 떠난(이소라고 한다) 새끼들이 많았다. 아쉽지만 한 해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올해 4월부터 시민생태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장항습지에서 멀지 않으니 해오라기가 둥지를 틀었을 것으로 기대했다. 어미새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게 외부에서 망원경으로 실시한 모니터링에서 중대백로, 쇠백로, 왜가리, 황로 둥지가 200쌍이 넘었다. 그리고 드디어 애타게 찾았던 해오라기가 알을 품고 있는 둥지! 생각보다 적었지만 여러 쌍이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 덩치가 큰 백로나 왜가리들 틈에 끼어 주위 움직임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했다. 13년 만에 다시 만난 해오라기 둥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위태로워 보였다. 집단 번식지 앞으로는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주변 하천은 오염이 심했으며 숲은 조각나서 듬성듬성 밭이 나있었다. 길고양이들도 호시탐탐 둥지를 노리고 있었다. 이곳의 미래도 그리 밝지 않음을 직감했다. 해답은 장항습지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후에도 백로번식지 모니터링소식을 시민생태모니터링을 통해 시민들께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황로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야생과 인간의 생태적 거리두기

동물들은 새끼를 키울 때 특히 예민하다. 이시기 새들은 둥지가 노출되면 새끼 키우기(육추라고 한다)를 포기하고 둥지를 버리기 일쑤다. 둥지가 노출되면 포식자의 위협이 커지고 그렇게 되면 새끼뿐만 아니라 자칫 부모의 목숨까지도 위험해 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지만, 새들은 반대로 수컷보다 암컷이 사망률이 높다. 암컷이 주로 포란하고 새끼를 돌보기 때문에 육추시기 포식자들의 공격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백로 둥지로 접근하는 길고양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요즘 호수공원에 아름다운 추장깃털을 단 후투티라는 새가 나무구멍에서 번식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나친 관심이 문제가 되고 있다. 후투티 사진을 찍기 위해 평일에도 수십 명씩 몰려드니 말이다. 둥지 앞에서 연사로 눌러대는 셔터소리가 후투티에게는 총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까치와 같은 포식자들도 관심을 가지게 됨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후투티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후투티 어미가 지금처럼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언제 새끼키우기를 포기하는 비극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자연과 사람 간의 일정한 거리두기, 나는 이를 ‘생태적 거리두기’라고 부른다. 코로나시국에 ‘거리두기’는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간에도 성립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인간이 생태계와 거리두기를 실패하면서 생긴 것임을 명심하자. 생태적 거리두기를 실패하면 언제든지 코로나와 같은 질병은 창궐할 수 있다.

도래울 백로번식지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백로 새끼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쇠백로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왜가리둥지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해오라기 유조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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