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오월로 접어들면서 농사일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경작면적이 넓다보니 눈길 닿는 곳마다 일거리가 지천이다. 고추며 토마토 같은 열매채소 모종도 심어야 하고, 감자며 땅콩 밭에 낙엽멀칭도 해야 한다. 마늘과 양파 밭의 김도 매야 하고, 각 작물의 특성에 맞게 지주대를 세워서 줄도 띄워주어야 한다. 그런데 오월이 다 지나가도록 낙엽멀칭은 고사하고 아직 모종도 다 심지 못했다.

올해 처음 만들어진 도민농장 시설공사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지축역 맞은편에 조성된 도민농장은 텃밭면적만 거의 육천 평에 달하고 신청 인원만 해도 무려 오백 명이 넘는다. 이곳에서 나는 요즘 두 명의 도시농부들과 함께 두 칸짜리 생태화장실과 정자와 퇴비간을 짓고 있다. 허허벌판에 변변한 편의시설 하나 없이 덩그러니 텃밭의 구획만 나눠놓은 상태라 주변에 빌려 쓸 화장실은 고사하고 따가운 햇볕을 피할 변변한 그늘조차 하나 없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최대한 작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꼬박 열두 시간을 쉬는 날도 없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강행군을 하다 보니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농사를 지으러 연일 수백 명씩 찾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작업을 늦출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팔 일만에 두 칸짜리 생태화장실 두 채를 완성했는데 그제야 당장의 급한 불은 껐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도민농장 곳곳에 흩어져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팔십 대의 자동차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은 하루 종일 미어터지고, 다섯 평 구획마다 팻말이 박혀있는 텃밭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재미나게 농사를 짓는다. 삼대가 모여서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농사를 짓는 집들도 많고, 얼핏 봐도 구십은 넘어 보이는 노인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점은 노년층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가 맨발로 텃밭을 일구기도 하고, 이십대 중반의 청년들이 의논을 해가며 작물을 심기도 하고, 엄마와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열심히 물을 길어 나르기도 한다.

멀찍이 떨어져서 농장을 가득 메우고 함박 웃는 얼굴로 농사짓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환해지면서 지척에 펼쳐진 북한산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도시농업이 우리의 일상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실감이 저절로 나면서 그간 쌓인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농사를 짓는 사람 숫자 못지않게 분양문의를 하러 왔다가 낙담하며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곱절 많다는 점이다. 도민농장 사무장의 전언에 의하면 농장이 개장하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잔뜩 기대를 하고 왔다가 입맛을 다시며 발길을 돌린 사람들만 천 명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농사지을 땅을 얻지 못하고 쓸쓸하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하루 빨리 고양시 곳곳에 시민농장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로 간절하게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설 작업이 아무리 고되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생태화장실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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