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새삼 말할 필요 없이 코로나19로 천태만상이 벌어지고 있다. 비대면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비대면 수업을 받아들였으나, 얼마 안 있어 여러 총학생회는 등록금 환불을 주장했다. 수업의 질이 떨어지니 등록금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었을 테다. 하지만 정작 수업이 진행되면서 다른 양상이 일어났다. 뜻밖에도 교육효과가 더 좋다는 반응이 나타났다.

이공계에서 가르치는 젊은 후배를 만났다. 이 친구의 고민은 늘 학생의 수학 수준이었다. 공대 수업을 받을 만한 기초가 없는 학생이 버젓이 수업에 들어오니 학생이나 교수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도움말이랍시고 그러면 방학에 공대생을 위한 수학수업을 해보라고 했지만, 논문에 업무에 짬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다 이번에 해결책을 발견했다며 기뻐했다. 인터넷 강의를 하다 보니, 학생들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한 대목을 스스로 돌려보며 진도를 따라오면서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는 것이다.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지만, 비대면 수업의 주요수단이 된 인터넷 강의의 장점이 나타났다. 기실 우리나라에서도 ‘거꾸로 수업’이라 알려진, 미래형 대학으로 평가받는 미네르바스쿨의 플립 러닝이 주목받았다. 교수자가 학생에게 알려주고픈 지식은 인터넷 강의로 해결하고, 대면수업에서는 토론을 주로 하는 수업방식이다.

일찌감치 이런 유형의 수업을 하자고 촉구하고 일부 대학은 선도적으로 준비했지만, 다수는 저항감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전환은 두렵고 귀찮기 마련이다. 물론, 이번 상황은 특수해서 대면강의가 없는지라, 진정한 의미의 플립 러닝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학기동안 쌓아놓은 영상은 얼마든지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소극적이고 제한적이었던 플립 러닝을 전면적으로 실시할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이를 얼마나 이해했는지 재는 산업화 시기의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교육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 터다.

후배가 가장 큰 고민으로 성적처리 문제를 들었다. 강의는 예상 밖으로 잘 되고 있어서 한숨을 놓았으나 공정한 시험은 골칫거리란다. 이미 몇 개 대학의 중간고사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된지라 더 고민이 많은 듯하다. 물론 이 후배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기술적인 해결방법은 준비해놓았다. 나는 이쪽은 잘 모르는지라 그 후배에게 엉뚱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대학 1학년 때 술 마시고 데모하느라 수업에 거의 안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영어는 시쳇말로 펑크가 났다. 복학한 다음, 마침 박사과정에 들어간 선배가 강의하는 수업에 등록했다. 편하게 학점 받으려는 속셈이었는데, 어린 후배들과 공부하기도 민망하고 마침 데모도 극렬해지던 시기라 강의를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선배가 고민이 많았단다. 출석으로 보면 또 펑크를 내야 하는데, 그러면 졸업을 못 하게 되니까 말이다. 아무튼 선배 덕에 졸업하고 세상 재미있게 살아왔다. 언감생심, 요즘 같은 시대에는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다. 상대평가에 학점별 비율까지 정확히 매겨져 있는지라 인연으로 은혜를 베풀 수가 없다. 얼마전 그 선배 만나 옛날 얘기하다 “성격이 칼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학점을 주어 졸업하게 해주었냐” 물었다. 너그러운 선배는 한없는 애정을 담아 얘기해주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의 현재 역량만이 아니라 미래 역랑도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아, 이 얼마나 감동스러운 말이더냐!

성적처리로 고민하는 후배에게 이 일화를 들려주며 큰소리쳤다. 자네가 진정한 교수라면, 지금의 역량만으로 학생을 평가하지 말고, 미래 가능성도 점칠 줄 알아야 하느니라고. 이번에 많은 대학이 절대평가를 용인하니 이 또한 실험적으로 시도해볼 만하잖냐고 했다. 후배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일부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내가 끝내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 선배는 나에게 C학점을 주었다. 무섭게도 내 인생의 수준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으니, 한낱 C급인생 살아갈 것을 예측한 것이다. 학생의 미래 역량을 평가한다는 것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법이니, 내가 후배에게 이것만은 끝내 말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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