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응식 사진작가 회고전 ‘부산에서 서울로, 1946~1960’

생활주의 리얼리즘 한국사진 선구자
대표작 ‘구직’ 등 흑백사진 53점 전시
손자 임상철씨, 조부 작품세계 재조명

임응식 작가의 사진을 관람중인 관람객들

[고양신문]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求職(구직)’이라는 사진은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모자를 눌러 쓴 젊은 남자가 ‘求職’이라는 팻말을 허리에 두르고 고개를 숙인 채 벽에 기대어 있다. 고단해 보이는 얼굴 표정과 힘없어 보이는 자세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 사진은 한국 전쟁 직후 실업자가 넘쳐나는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사진의 선구자로 불리는 임응식 작가가 1953년에 명동에서 찍은 사진이다.

초기 그의 사진은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소재로 아름다운 것만을 담는 소위 ‘살롱사진’이라 불리는 형태였는데, 한국 전쟁 이후 예술적 살롱 사진 대신 현실의 모습을 담아내는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했다. 그는 사진가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이자 비평가로서도 수많은 업적을 이뤘다.

2001년 90세의 일기로 작고한 임응식 작가를 재조명하는 회고전시가 ‘부산에서 서울로, 1946~1960’이라는 주제로 강남의 ‘스페이스22’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시에서는 1946년부터 1960년까지 부산과 서울이라는 두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을 볼 수 있는 흑백 사진 53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안북스(대표 김정은)’에서 최근 출간한 임 작가의 사진집도 구입할 수 있다.

갓을 쓴 어르신들이 우산을 들고 철길을 따라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일가족, 대로에서 마차를 끌고 가는 마부와 그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양주, 초콜릿, 통조림 등 외제 물건들을 잔뜩 실은 노점 수레 위에 앉아 있는 소녀 등 대부분 옛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와 출판은 임 작가의 손자인 임상철 씨의 노고로 이루어졌다. 15년째 고양시에 살고 있는 임 씨는 2017년 부친 임범택 씨가 세상을 뜬 후 조부의 작품과 사진 관련 자료들을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 사진가로서의 조부의 일생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해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SNS에 ‘임응식사진아카이브’를 오픈 한 후 꾸준히 사진을 올렸다.

'임응식사진아카이브'와 회고전을 통해 조부의 작품을 재조명한 임상철씨.

그는 원본 필름의 보존방법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고, 나름대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기존 필름 속지를 중성 속지로 교환하여 8만여 컷의 필름을 50여 권의 파일북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원본 필름을 스캔해 모든 필름의 이미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디지털 작업까지 마무리했다. 파일별 이미지들은 엑셀 작업을 거쳐 촬영연도와 가제를 붙이는 등 캡션까지 완성했다. 꼬박 3년이 걸린 작업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혈연관계를 배제하고도 한 인간으로서, 사진가로서, 예술인으로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든 여건을 견디며 묵묵히 아카이브에 정진할 수 있었던 이유도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결과물을 세상과 공유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임응식 사진작가 회고전을 진행중인 전시장 입구

9일 전시장에서 만난 임상철 씨는 “그동안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를 세상과 공유하게 되어 의미 있는 순간이자, 성과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된 영광의 순간”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더불어 “이번 전시와 출판을 계기로 임응식 사진가의 업적과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많은 자료에 대해 제 개인적 차원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 보존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9일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는 7월 9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전을 할 예정이다. 임상철 씨는 “앞으로 준비되는 대로 임응식 작가의 1960년 이후 작품도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응식 사진작가 회고전 
‘부산에서 서울로, 1946~1960’

전시기간 : 6월 9일(화)~7월 9일(목) (공휴일 휴관)
전시장소 : SPACE22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390 미진프라자빌딩 22층)

 

이번에 새로 출간된 임응식 작가의 사진집
임응식 작가의 회고전을 진행중인 SPACE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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