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그림책으로 본 세상> 『삐약이 엄마』

박미숙 책과도서관 대표/ 책놀이터 작은도서관 관장

‘9살 남아 여행용 가방에 감금한 계모 긴급체포’
‘캐리어 안 멍든 채 심정지… 9세 아들 학대 계모 일부 자백’
‘캐리어에 갇혀 7시간 있던 9살 사망… 아이 가둔 계모 죗값은 얼마나 받을까?’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간신문 헤드라인이다. 퀴즈. 이 헤드라인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그림책 『삐악이 엄마』(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에는 악명 높은 고양이 니양이가 나온다. 니양이는 먹을 것만 밝히는 데다 작고 약한 동물들 괴롭히길 좋아한다. 어느 날 따스한 달걀 한 개를 주워 먹은 니양이. 그런데 니양이 배가 점점 불러오고 갑자기 배가 아픈 니양이는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렇게 니양이의 똥구멍으로 툭 튀어나온 작고 노랗고 귀여운 병아리. 그 병아리는 니양이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삐약…’

『삐약이 엄마』(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

니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순간 니양이는 엄마가 된다. 삐약이라고 이름도 붙이고 졸졸 따라다니며 돌본다. 그런 니양이를 이웃들은 ‘삐약이 엄마’라 부른다. 니양이도 그 이름이 마음에 쏙 든다.

우리는 아동학대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계모, 계부, 양모, 양부, 의붓아들, 의붓딸… 이런 단어를 심심치 않게 본다. 옛날이야기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콩쥐팥쥐’에 등장해 나쁜 사람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계모. 이번 경우만 해도 그 계모가 어린 의붓아들을 캐리어에 넣어 죽게 한 것이다. 사건의 원인이 마치 ‘계모’여서 발생한 것처럼 몰아가는 전형적인 나쁜 기사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아동학대 통계를 살펴보면 피해 아동의 가족 유형은 친부모 가정이 55%, 재혼가정이 5.8%이다. 또한,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의 관계를 살펴보면 친부모는 73.5%, 계부모는 5.2%, 양부모가 0.2%에 불과하다. 대리 양육자인 친인척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4.5%나 된다는 결과와 비교해 봐도 아동학대에 대한 계모, 계부 타령은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재혼 가정은 점점 많아지는 추세로 2018년 기준 10만 8,700건에 이른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인식은 옛날이야기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니양이는 갓 태어난 삐약이가 품으로 파고들자 삐약이를 핥아준다. 그리고 이름을 지어준다. 병아리가 ‘삐약이’가 되는 순간. 이게 관계의 시작이다. 그리고 니양이 역시 ‘삐약이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서로가 새로운 이름을 갖고 그렇게 불리게 되면 그게 그대로 관계가 된다. 사회적 잣대와 시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고 싶은 언론이 계부모, 양부모라는 말로 가르고 나눌 뿐. 서로를 부르는 이름만으로 가족은 충분하다. 그런 가족이 차별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세상엔 이미 다양한 가족 형태들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탈가족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회에서 계부모, 양부모 같은 용어들은 이젠 여전하지 않아도 될 구시대적인 명칭이다.

세상에는 여전해서 좋은 것들이 훨씬 많다. 방긋 웃는 아이를 따라 웃게 되는 눈빛, 걸음마를 시작할 때 넘어질까 조마조마하면서도 한 걸음 더 오라고 내미는 손짓, 친구와 싸우고 돌아온 아이를 달래는 입술, 시험 기간 예민해진 아이 방을 지날 때 나도 모르게 들게 되는 발끝, 이제 곁을 떠나게 된 아이를 한 번 꼭 안아주고 싶은 가슴. 부모라는 이름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 친모, 친부, 계모, 계부, 양모, 양부.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충분한. 이제 그런 세상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뱀발. 책 속 니양이는 수컷이었을까? 암컷이었을까? 이건 또 다른 질문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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