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장마가 시작되었다.

어슬렁어슬렁 농장에 도착하니 빗소리가 시원스레 울려 퍼진다.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와 양파와 오이를 듬뿍 썰어 넣은 짜장라면을 들고 느티나무 아래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음악처럼 울려 퍼지는 빗소리가 천지에 가득하고 다양한 새들이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지저귄다. 농장에서 홀로 한가할 때는 주로 라디오를 틀어놓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자연이 선사하는 소리의 향연에 귀를 기울이며 캬아, 막걸리를 들이켜니 수확에 지친 피로가 절로 씻겨나간다.

지난 일주일간 농장은 수확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분주했다.

봄에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심 걱정들이 많았다. 겨울이나 다름없는 요상한 봄추위에 작물들은 저마다 냉해를 입었고, 무엇보다 추위에 강한 감자줄기가 군데군데 까맣게 얼어 죽는 바람에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그러나 사십 년 동안 숲이었던 농장의 기름진 흙이 작물들을 지켜주었고 작물들은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다.

이윽고 하지를 맞아 다들 감자를 수확하는데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감자의 씨알은 더할 나위 없이 실했고, 무게를 달아보니 평균 열다섯 배의 소출이 나왔다. 한마디로 대풍이었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면 감자의 경우 통상 여덟 배에서 열 배의 소출이 나오는데 열다섯 배의 수확량이라니 다들 신바람이 났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기껏해야 두세 평 감자농사지은 회원들이 이십 평 밭에서 감자를 수확한 내게 맛이나 보라며 감자 보따리를 쓰윽 내밀기도 했다.

입이 귀에 걸린 건 양파공동체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양파공동체 회원들은 십 년 가까이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는데 그 어느 해보다 양파의 수확이 풍성해서 저마다 사십 킬로그램 양파더미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다.
 

▲ 양파공동체 회원들이 양파 수확한 후 사진 한 장 찰칵.

결과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출이 좋으면 이 맛에 농사짓는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농사가 늘 뜻대로 되는 건 아니고 더러는 땅이 꺼지게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그래도 농사는 대체로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 그 덕분에 농사가 잘 안 됐을 때도 기운을 내게 된다. 그러다보면 올해와 같이 대풍을 맞는 날이 오기도 하는데 그때의 희열은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짜릿하다.

김준태 시인의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에는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에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농사를 지어보면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노력한 만큼 주렁주렁 매달린 애호박과 오이와 고추와 참외와 토마토는 말할 것도 없고, 고구마와 땅콩을 캐고 김장채소를 수확할 때도 세상일이 이와 같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일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농사는 누구나 구슬땀을 흘려가며 고생한 만큼 평등하게 결실을 맺지만 세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과 반할 때가 많고,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늘진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농장에서는 모두가 평등한데 농장 밖에만 나가면 온갖 불평등한 일들이 펼쳐진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평등하게 일하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세상에서 환하게 웃으며 살 수 있을지, 느티나무 아래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꿈같은 생각을 해본다.

 

▲ 24일 농장에 첫 장맛비가 내렸다. (핸드폰 사진이라 그런지 비 오는 모습이 잘 잡히지 않았다^^)

 

▲ 씨감자 1.5kg를 심은 회원이 수확한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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