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남 소설가

[고양신문] 며칠 전 삐라로 시작된 남북관계 상황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파괴로 이어지면서 갑자기 냉각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냉각된 이유는 따로 있다. 좀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미국의 대북경제제재 때문이다.

문제는 이에 대해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태도다. 이는 무엇보다 6월 12일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공화당 의원과 민주당의 에드 마키 의원이 공동발의한 결의안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즉 ‘한미 동맹은 동북아 안보의 핵심 축’이며, ‘한미는 평화와 북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 외교적 관여와 경제적 압박, 군사적 억지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 말은 한국을 북의 비핵화를 위한 도구, 즉 미국의 안보를 위해 존속하는 존재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는 동맹의 본질인 수평적 관계를 떠나 수직적 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평화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젠 그만 꿈을 깨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과 우리의 만남은 처음부터 무력충돌로 인연을 맺은 셈이다. 1871년 6월 함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강화도에 군대를 강제로 상륙시킨 미국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 우리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된다. 이른바 신미양요라 부르는 전투에서 얻은 성과물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미국은 우리가 청국의 부속 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서명하였다. 즉, 조선을 하나의 독립국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 뒤 일제강점기에 잠시 외교가 단절되었으나 1945년 태평양전쟁 승전국으로 다시 상륙한 미국은 이번엔 점령군의 자격으로 군정청을 통해 3년 동안 38이남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초기부터 줄곧 임시정부를 부인하고, 신탁통치를 고수하여 우리의 자주독립을 막은 군정청의 전횡은 역사가 이미 증명해주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종전 몇 년 전, 강대국 정상 3인이 북위 38도를 분단선으로 확정한 포츠담회담에서도 당사국인 우리는 초청을 받지 못했다.

악연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강대국들의 이념적 갈등과 패권주의로 야기된 한국전쟁이 휴전선을 그은 채 끝난 1953년 10월, 주한미군이 주둔할 수 있는 명분을 갖기 위해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윽고 1966년 7월엔 주한미군들이 횡포를 부려도 어찌할 수 없는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까지 체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최근엔 우리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북군사력 억제라는 미명 아래 사드가 배치되었고, 이제는 한미군사훈련비와 주한미군방위비까지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실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은 여기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남북협력의 모든 것을 사전에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미국은 다시 2018년 한미워킹그룹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조직체는 어느새 우리 머리 꼭대기에 앉아 미국의 절대적 간섭행위를 대신하고 있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정상화 재개, 남북철도 도로 연결 공사, 방역보건 의료협력,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 4.27 선언에 이어 9.19 군사합의 선언까지 남북이 어렵사리 합의한 사업들이 그 실행단계에서 가로막히고 틀어진 것은 모두가 이 조직체의 농간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세계 각국은 지금 다른 나라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 모두가 자국의 국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이는 강대국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은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저들은 지금 어쩌면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통일이 되었을 경우 발생할 손익까지 미리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도 이젠 통일을 누가 도와줄 거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은 오직 우리가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 어떤 나라를 의지할 것도, 보고할 것도, 또 지시나 허락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옳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행하면 된다. 자주국가란 바로 그런 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번 남북관계만 봐도 그렇다. 형제간에 일어난 아주 사소한 갈등에 불과했던 이번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한바탕 떠들썩하긴 했으나 구체적 도움을 준 나라는 없다. 결국은 김정은 위원장이 스스로 군사도발계획을 보류함으로 일단락 시켰다고 봐야 한다.

금년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바라는 평화통일은 아직 요원하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혹시 아직도 사대주의에 젖어 미국이 무언가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 탓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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