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의 이웃] 고순자 애천건강연구회장

요양병원 근무하며 주변에 ‘웃음꽃 선물’
지하철로 왕복 3시간 출근… 건강 거뜬
“긍정적인 마음이 최고의 건강비법”

60세 넘어 취득한 자격증만 14개
당당히 받은 월급으로 밥도 척척 쏘고
연금으로 기관·단체 10곳 정기후원

화정동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고순자 어르신. 청춘의 열정과 건강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82세 현역 간호사다.
화정동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고순자 어르신. 청춘의 열정과 건강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82세 현역 간호사다.

[고양신문] 팔십대의 나이에도 현역 간호사로 일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정동의 한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한눈에도 활력이 넘쳐 보이는 어르신이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으며 ‘애천건강연구회 고순자 회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신다. 1939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 둘. 남들은 요양병원에서 돌봄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고 회장에게는 요양병원이 엄연한 직장이다.
“동두천에 있는 한 요양병원의 야간 담당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데만 하루 세 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한 달에 15일을 꼬박 출근해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몸이 불편한 50여 명 어르신들의 안전한 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는 요양병원 환우들은 물론 직원과 환자 가족들로부터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단다. 단순히 증상을 돌보고 약을 처방하는 것을 넘어서,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언제나 긍정 에너지를 사방에 팡팡 발산하기 때문이란다.
“저는 약보다 중요한 게 마음이라고 늘 생각해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불편한 것을 어떻게든 해결해 드리고, 걱정하는 일이 있으면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해 드리지요.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자분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답니다.”

동두천 요양병원에서 야간 간호사로 일하는 고순자 어르신. 단순히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에게 웃음 에너지를 선물한다.
동두천 요양병원에서 야간 간호사로 일하는 고순자 어르신. 단순히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에게 웃음 에너지를 선물한다.

이력서 5장 빼곡이 채운 ‘바쁜 인생’

고순자 회장이 본인 소개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이력서를 기자에게 건넨다. 여태껏 기자가 구경한 이력서 중 가장 두툼하다. 학력과 경력은 물론, 교육수료내역, 그리고 취득한 면허와 자격들이 자그마치 5장에 걸쳐 빼곡히 적혀있다. 연도는 물론 날짜와 발령청까지 한치도 빠짐없이 타이핑된 이력서가 부지런히 달려 온 고 회장의 여든 두 해 인생을 고스란히 대변해준다.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고 회장은 종로구·마포구 보건소, 이북오도청 의료상담실 등에서 근무했고, 경희대 간호학과에서 전임강사로 후배들을 가르쳤다. 한편으로는 사업을 했던 남편을 도와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친화력 좋고 활기 넘치는 성격 덕분에 어느 모임에서든 환영을 받아 연세대 간호대학 가정전문간호사 동문회장, 한국간병인협회 고문, 적십자간호대 평생교육원 동문회장 등을 지냈고, 현재도 연세대 여자동창회와 총동문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

웃음치료 공부하니 웃을 일 더 생겨

기자에게 고순자 회장을 소개한 이는 고양신문 독자인 한만희 한국유머웃음전략연구소장이다. 고 회장과 연세대 동문인 한 소장은 학벌로는 까마득한 후배지만, 한편으로는 고순자 회장의 스승이기도 하다. 고 회장이 5년 전 한만희 소장의 웃음전략연구소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웃음치료전문가와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한만희 소장 덕분에 만년 인생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레크리에이션 도구들이 담긴 가방을 들고 동문회나 모임 자리에서 나만의 무대를 선보이면 박수와 웃음이 쏟아지지요.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언제 그런걸 배웠냐’며 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이렇듯 배운 바를 200% 써먹는 고순자 회장을 한만희 소장은 수업시간마다 소개하곤 한단다.
“제 강의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호기심이 청춘을 부른다’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호기심이 살아있으면 누구나 활기찬 청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메시지에 딱 들어맞는 롤모델이 바로 고순자 선배님이십니다. 세상을 향한 선배님의 멈추지 않는 호기심에 저도 깜짝 놀랄 정도니까요.”

고순자 어르신은 대학 동문 후배인 한만희 한국유머웃음전략연구소장(왼쪽)을 만나 인생의 기쁨과 보람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고순자 어르신은 대학 동문 후배인 한만희 한국유머웃음전략연구소장(왼쪽)을 만나 인생의 기쁨과 보람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한만희 소장의 평가처럼 고 회장의 열정은 나이가 들수록 가속도가 붙는 듯 보였다. 이력서에 기재된 경력을 살펴보니 60세가 넘어 수료한 교육과정이 의료, 돌봄, 음악, 인문학, 신앙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20여 개나 된다. 그뿐 아니다. 교육과정의 결과로 취득한 자격증만 해도 사회체육지도사, 비만케어관리자과정, 노인체육지도사, 인지재활지도사 등 무려 14개가 넘는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즐겁게’

현역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끊임없는 배움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은 대체 뭘까.
“우선 제 건강을 스스로 잘 챙기지요. 발효음식을 비롯해 몸에 좋은 식품들을 선호하구요. 예를 들면, 아침식사는 청국장 가루와 황태포 볶아서 만든 가루를 섞어서 먹는 식이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생각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집안을 청소하듯 제 머릿속도 깨끗하게 청소해 놓으려고 합니다. 어제에 대한 후회도, 내일에 대한 걱정도 쓸데없는 것들이니까 자꾸자꾸 비워내는 것이지요. 저는 내가 살아있는 바로 오늘을 부지런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웃음).”

후배들이 전해준 생일축하 편지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고순자 어르신.
후배들이 전해준 생일축하 편지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고순자 어르신.

고순자 회장의 긍정 마인드의 바탕에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입문한 가톨릭 신앙도 든든한 토대가 돼 주고 있다.
“몇 해 전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성격이 좀 급했어요. 그래서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명동성당에 가서 새신자교육을 시작했지요. 그리고는 내유동에서 화정으로 이사를 왔는데, 화정성당이 바로 앞에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고순자 회장은 매일같이 오전 10시에 드리는 일일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한단다. 밤샘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날에도 어김이 없다. 미사를 마치면 친한 교우 몇몇을 집으로 불러들여 유쾌한 수다를 곁들인 커피타임을 갖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가능하면 제가 작은 것이라도 주변에 대접하려고 합니다. 대학 원로 동문들을 만나면 과거에 회장님이다 원장님이다 잘 나가던 양반들도 지금은 모두 저를 부러워한답니다. 다들 은퇴하고 용돈 받아 생활하지만, 저는 아직도 당당하게 일하며 월급을 받고 있으니까요. 밥 한 그릇, 차 한잔을 사도 제가 사야죠(웃음).”

고순자 회장은 국가에서 통장에 넣어주는 노인연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 그가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는 곳은 종교기관, 봉사단체, 복지센터 등 열 곳이 넘고, 정회원으로 소속된 단체 역시 열 곳이나 된다.

“젊은 활기 넘치는 화정동이 참 좋아”

고 회장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화정동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성당도 가깝고 코앞에 공원도 있고, 무엇보다도 한밤중에도 꺼지지 않는 로데오 거리의 불빛이 활기를 더해주기 때문이란다.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거리의 모습이 정말 좋아요.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지니까요. 그렇다고 젊은 나이를 부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청춘을 사는 분들이 진짜 제 롤모델이지요. 각당복지재단 이사장이신 103세 김옥라 여사님, 모두의 큰 스승이신 100세 김형석 교수님, 나이를 거꾸로 자시는 94세 송해 선생님, 기업가이자 교육자인 88세 이용태 박사님이 제가 존경하는 청춘 4인방이랍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한만희 소장이 “남 얘기 할 것 없다”면서 “고순자 선배님이야말로 후배들이 늘 따라가고 싶은 롤모델”이라고 말한다. 기자 역시 이토록 활기차고 멋진 어르신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계시다는 사실이 기쁘고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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