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이웃] 현대인형극회 조용석·여영숙 부부

“인형극과 함께 한 세월, 부부합쳐 110년”
1960년대부터 TV인형극 도맡아 제작
가좌동에 전시장 겸 작업공간 마련
추억 호출하는 반가운 캐릭터들 가득

현대인형극회 조용석 대표, 여영숙 원장 부부는 둘이 합쳐 인형극 경력 110년에 이르는, 우리나라 인형극 역사의 산 증인들이다.
현대인형극회 조용석 대표, 여영숙 원장 부부는 둘이 합쳐 인형극 경력 110년에 이르는, 우리나라 인형극 역사의 산 증인들이다.

'나는야 부리부리 부리부리 박사~!'
커다란 안경을 쓴 부엉이 박사님이 등장하는 인형극 부리부리박사의 주제가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적어도 50대 이상이다. 1970년대 중반 KBS TV에서 방영된 인형극 부리부리박사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 어린이 프로였다. 그 무렵 초등학교에 입학한 기자 역시 친구들과 뛰놀다가도 부리부리박사를 보기 위해 TV앞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새롭다. 2000년대 뿡뿡이, 2010년대 뽀로로로 이어지는 꼬마 대통령 원조가 바로 부리부리박사인 셈이다.

부리부리박사를 탄생시킨 주인공들이 고양시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자청했다. 일산서구 가좌동의 한 농가주택에 딸린 창고. ‘현대인형극회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방 인형들의 세상이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진열장 한쪽에 부리부리박사출연진들이 모두 모여 있다. 부리부리박사님의 친구들인 다람쥐 삼형제 딩글이 댕글이 동글이, 그 옆에는 늘 악당 역할을 담당했던 심술꾸러기 늑대 형제들도 보인다.

“우와, 저건 컹컹이와 쌩쌩이 아녜요~?”
“하하하~ 컹컹이 쌩쌩이를 알아보시는 걸 보니 기자 양반도 나이가 꽤 되셨는가보네(웃음).”

1970년대 인기 프로였던 '부리부리박사'의 캐릭터들.
1970년대 인기 프로였던 '부리부리박사'의 캐릭터들.

반가운 웃음으로 기자를 맞아준 이들은 조용석 현대인형극회 대표, 여영숙 현대인형극회 아카데미 원장 부부다. 여 원장은 내가 부리부리박사 인형 속에 들어가 있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부리부리박사님이 여자였다는 사실을 45년 만에 알게 됐다.
올해로 조 대표가 60년째, 여 원장은 49년째 인형극과 함께하고 있으니 이들의 삶이야말로 고스란히 대한민국 인형극의 역사다.

두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장 안을 둘러보았다. 1960년대에 태어난 캐릭터부터 2000년대에 만들어진 인형들까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종류도 줄인형, 손인형, 탈인형, 그림자인형 등 가지작색. 추억을 새록새록 샘솟게 하는 반가운 얼굴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먼저 인기를 얻은 프로는 70년대 초반 방영을 시작한 짱구박사였어요. 짱구박사에 이어 부리부리박사가 요즘 말로 시청률 대박을 쳤구요. 이후에는 역사의 위인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인형극들을 차례차례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리부리박사'의 한 장면.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부리부리박사'의 한 장면.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여 원장의 설명처럼 당시 KBS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인형극이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했다. 요즘처럼 그림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 꼬마들은 동명성왕, 명장 김유신, 사명대사, 바보 온달, 오성과 한음, 충신 박재상 등의 이야기, 그리고 삼국지와 손오공 같은 고전들을 TV인형극을 통해 가장 먼저 접했었다.

물론 인형극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린 아톰과 마린보이, 독수리오형제와 같은 TV만화영화들이 있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전부 일본이나 미국에서 수입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과 당당히 경쟁하며 우리 정서에 맞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창조해낸 인형극들의 활약에 뒤늦게나마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지 싶다.

“인형극의 모든 것 보여주는 박물관, 고양에 세워졌으면”

소장한 인형·캐릭터 1만점 넘어
시대상·기술변천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
“어른들에겐 추억, 아이들에겐 즐거움”

부리부리박사가 등장한 건 70년대 중반이지만, 현대인형극회의 역사는 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 TV가 남산 방송국에서 개국하며 극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조용석 대표의 회고를 들어보자.
"제일 큰 형님이 KBS TV에서 일하셨는데, 인형극 프로그램을 만드셨죠. 이후 6남매가 모두 인형극에 뛰어들었고, 지금까지도 나와 막내 동생, 아내, 그리고 딸까지 현대인형극회의 명성을 잇고 있습니다.”
 

부리부리박사의 초창기 모습.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부리부리박사의 초창기 모습.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중학생 시절부터 방과후에 남산 방송국으로 달려가곤 했다는 조용석 대표는 대한민국 인형극 변천사는 물론, 방송기술의 변천사도 생생히 꿰고 있다.
"맨 처음에는 줄인형으로 시작했고 무조건 생방송이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방송장비도 시설도 참 열악했지요. 1968년도에 비로소 KBS에 녹화장비가 처음 도입됐고, 인형극도 장대인형과 손인형, 탈인형이 골고루 등장했습니다. 74년도부터 방영을 시작한 부리부리박사는 처음으로 크로마키 촬영기법(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하고 배경 화면을 합성하는 기술)을 일본에서 도입해 만든 작품입니다. 당시는 흑백TV 시대였는데, 우리는 일찌감치 칼라로 녹화를 뜬 셈이지요.”

이번에는 여영숙 원장의 데뷔 스토리를 들어보자.
"고고등학교를 마치고 1972년도에 KBS 방송국에 알바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인형극을 하게 됐고, 거기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부리부리박사를 찍을 때가 신혼이었는데 뱃속에 아이를 가진 채 연기를 하기도 했다.
이후 현대인형극회는 KBS뿐만 아니라 MBC, EBS 등 모든 방송사로 활동무대를 넓혀 어린이 프로는 물론, 교양과 예능까지 인형이 등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역사인물 인형극 시리즈.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역사인물 인형극 시리즈.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88올림픽 호돌이, 바르셀로나 코비

현대인형극회는 캐릭터 인형을 만드는 제작회사로서의 커리어도 찬란하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삼성라이온스의 사자, OB베어스의 곰, MBC청룡의 용 등 각 구단의 마스코트 대부분이 현대인형극회에서 제작됐다. 초창기 프로야구의 인기를 대변했던 캐릭터 인형들이 스포츠 팬들의 추억을 호출한다. 그밖에도 경찰청 포돌이, 서울랜드 아롱이 다롱이처럼 수많은 기업과 기관, 지자체의 캐릭터 인형도 현대인형극회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
그 중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바로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다.
"처음 만든 올림픽 캐릭터는 84LA올림픽 이었어요. 이후 88년 서울올림픽 호돌이’, 90년 북경아시안게임 팬더’,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코비’, 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하콘과 크리스틴까지 줄줄이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꼼꼼하게 잘 만든다고 IOC에 소문이 났다고 하더라구요. 대단한 영광이었죠.”

88올림픽 호돌이 캐릭터. 현대인형극회의 솜씨로 만들어졌다.
88올림픽 호돌이 캐릭터. 현대인형극회의 솜씨로 만들어졌다.

예술장르 인형극 되살리려 노력

조 대표와 여 원장은 2000년대가 시작되며 방송국 활동을 정리했다. 현대인형극회에서 배출된 후배와 제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예술장르로서의 인형극을 본격적으로 펼쳐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대인형극회 아카데미를 통해 인형극을 활용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조용석 대표는 현대인형극회는 1960년대부터 독립된 예술장르로서의 인형극에 대한 고민과 도전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미 60년대부터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인형극 퍼포먼스 인형들의 휴일등 창의적이고 신선한 작품들을 제작해 국립극장 등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당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예술성 높은 문화공연으로 신문에 크게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1968년에는 콤마 촬영(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2시간짜리 영화 콩쥐팥쥐를 만들어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구요.”

여영숙 원장은 인형극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TV에서 어린이 시간에만 편성을 하다 보니 인형극은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지요. 하지만 유럽에서는 예술장르로서의 인형극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만 해도 나이 든 어른들이 인형극을 즐기구요. 자료를 찾아보면 우리에게도 지역마다 인형극이 성행했던 역사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모두 명맥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현대인형극회 60년의 역사를 사진으로 진열해놓은 공간.
현대인형극회 60년의 역사를 사진으로 진열해놓은 공간.

우리만의 정서 담은 인형극 세계에 선보여

2000년대 이후 현대인형극회에서 제작한 공연작품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상하이 아트 페스티벌에서는 퍼포먼스 어워드(2009)를 수상했고,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인형극 축제에서는 최고 인기상(2010)을 받았다.

조용석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2006년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을 꼽았다.
"당시 코리안 환타지라는 작품을 가지고 참가를 했지요. 줄인형극이지만 한국무용 전공자들로 스태프를 꾸리고, 국립극단 연출자로부터 전통춤 동작을 하나하나 사사받아 인형의 움직임을 표현했습니다. 세계적 인형극의 대가인 브라운 핸슨씨가 우리 작품을 보더니 당신의 작품에는 혼이 담겨 있다며 최고의 칭찬을 건네더라구요.”

늘 새로운 창작무대를 선보인 현대인형극회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수없이 공연됐고, 상도 여러 번 탔다. 그 중에서 조 대표 부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상은 바로 2010년 고양호수예술축제 최우수상 수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서 열리는 국제적 공연예술축제라 호수예술축제에 대한 애정이 클 수밖에 없지요. 2010년에는 국악 인형극 덩덩쿵따쿵이라는 작품을 들고 직접 참가했는데, 당시 60여 편이 넘는 참가작 중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공연전문가와 관객 등 300명이 넘는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결과라 더 뿌듯했구요.”

현대인형극회가 선보인 예술성 높은 인형극 공연.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현대인형극회가 선보인 예술성 높은 인형극 공연.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14년차 고양시민 이웃과 만나고파

조용석 대표와 여영숙 원장 부부는 2000년대 중반 고양시로 이사를 와 현재는 삼송동에 거주하고 있다. 가좌동 창고를 현대인형극단 전시장 겸 작업장으로 꾸민 것은 올해 초부터다. 이곳에 전시된 수백점의 인형들은 사실 현대인형극단 소장품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김포에 오랫동안 사용해 온 창고 겸 작업장이 있습니다. 이곳 가좌동 전시장에는 작은 인형, 또는 탈인형의 머리 부분만 가져다 놓았지만, 김포 창고에는 현대인형극단의 모든 역사를 보여주는, 1만여점이 넘는 인형들이 보관돼 있습니다.”

일산서구 가좌동 창고 겸 작업실에는 수백가지 인형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일산서구 가좌동 창고 겸 작업실에는 수백가지 인형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김포에 커다란 창고가 있는데도 가좌동에 또 다른 전시장을 꾸민 이유가 뭘까.
"우리가 살고 있는 고양에서 이웃들과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인형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른들은 잊고 지냈던 동심을 추억하고, 아이들은 아날로그 인형들의 매력에 빠질 수 있습니다. 현대인형극단이 만들어온 풍성한 콘텐츠와 스토리를 고양시민들과 어떻게 나눌지 구상중입니다.”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조용석 대표와 여영숙 원장의 궁극적인 꿈은 인형들을 전시하고, 공연도 열리고, 인형극에 대한 강연도 들을 수 있는 인형극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현대인형극회가 보유하고 있는 소장품들이 고스란히 대한민국 인형극의 역사이니 콘텐츠는 걱정할 게 없다. 하지만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응원을 요청했다. 
“인형극 박물관을 마련하는 일에 지역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성장기를 함께 해 준 TV인형 친구들,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각종 캐릭터 인형들, 그리고 예술성 높은 인형극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예술공간이 이왕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 만들어지기를 꿈꿔봅니다.”

1960년대 현대인형극회가 제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콩쥐팥쥐'의 한 장면.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1960년대 현대인형극회가 제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콩쥐팥쥐'의 한 장면. [현대인형극회 홈페이지 사진자료]

 

인형극 박물관이 고양시에 건립되기를 꿈꾸고 있는 조용석 대표(오른쪽), 여영숙 원장 부부.
인형극 박물관이 고양시에 건립되기를 꿈꾸고 있는 조용석 대표(오른쪽), 여영숙 원장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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