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북한산·북한산성 (7) 삼천사·승가사 마애불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승가사 마애석가여래좌상
고려시대 대표하는 마애불 두 개, 모두 북한산에
서로 다른 조형미로 세월 뛰어넘는 감동 전해

두 개의 바위 부처님 차례로 만나는 답사길
붙임바위 사모바위 등 바위신앙의 흔적 곳곳에
북한산, 10여 개 마애불 품은 거대한 박물관

북한산 비봉능선 사모바위에서 바라본 의상능선의 연봉들.
북한산 비봉능선 사모바위에서 바라본 의상능선의 연봉들.

[고양신문] 북한산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 땅 불교문화의 자취를 살피게 된다. 불교는 삼국시대 한반도에 전래된 이후 한민족 역사에 녹아들어 시기에 따라, 또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색깔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통일신라는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불교 건축과 예술의 융성기를 구가했지만, 지역적으로 왕성 서라벌(경주)에 편중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뒤이어 등장한 고려시대에는 각 지방 호족세력의 본격적인 성장과 맞물려 불교문화의 전국화, 대중화를 맞이하게 된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유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애불(磨崖佛)이다. 거대한 바위나 암벽에 새긴 부처, 또는 보살을 말하는 마애불은 현재 전국에 200여 개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많은 숫자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이 시기 마애불을 대표하는 두 개의 소중한 문화재가 바로 북한산 화강암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한 분은 앉은 채, 한 분은 선 채로 천년의 세월을 지킨 북한산의 바위 부처님, 승가사 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과 삼천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이다. 둘 다 행정구역상 서울에 속한 문화재들이라 고양시가 제작한 북한산 소개 자료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조들의 자취를 더듬는 여정에 오늘날의 행정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10세기 무렵에 나란히 만들어진 북한산 마애불을 만나러 천년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고려시대 석가여래입상이 자리한 북한산 삼천사.
고려시대 석가여래입상이 자리한 북한산 삼천사.

마애불, 당대의 경제력과 미의식 반영

마애불은 우리 민족 고유의 바위신앙과 불교라는 고등 종교가 만나 탄생한 유산이다. 바위신앙은 연재 초기에 살폈던 산신신앙이 좀 더 구체적으로 발현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이 땅의 선조들은 크고 불변하는 바위 앞에서 작고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의탁해왔다. 힘 있게 불끈 솟아오른 바위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성신앙(性信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바위, 힘을 상징하는 범바위나 매바위, 눈썹바위, 갓바위 등 특정한 모양을 닮은 바위들이 마을마다 숭배되기도 했다. 이러한 심성으로 미루어볼 때 불교가 도래한 이후 가장 높고 숭고한 존재인 부처와 보살을 바위에 새기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마애불은 보면 볼수록 은근하고 매력적인 문화재다. 마애불이 품은 예술적 아우라의 출발점은 자연이 창조한 바위나 암벽이고, 여기에 정과 망치를 든 석공들의 서로 다른 미적 감각이 더해져 열이면 열, 모두 다른 개성을 발산하게 된다.

특히 고려시대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며 축적된 석공 기술을 토대로 마애불이 전국적으로 만들어졌다. 무엇보다도 북한산은 마애불이 만들어지기에 너무도 좋은 장소였다. 수도 개경(개성)에서 멀지 않은, 요즘으로 치면 수도권에 해당하는 거리였고, 일찍부터 대규모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문화가 번성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마애불의 원석인 화강암 바위와 절벽이 온 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 마애불의 각기 다른 규모와 조형미는 당대의 사회와 권력, 그리고 경제력이 다채롭게 분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왕실과 귀족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과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로 압도적이고 웅장한 마애불을 만들었고, 백성들 역시 마을과 집안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을 간절한 불심에 담아 투박하지만 친근한 마애불을 만들었다. 예술적 관점으로 보자면 전자는 비례미와 조형성이 두드러지는 귀족적 경향으로, 후자는 비례나 균형미에 얽매이지 않는 토속적이고 대중적인 모습으로 구현되기도 했다. 오늘의 주인공인 삼천사와 승가사의 마애불은 규모와 미학적 측면에서 전자에 해당한다.

삼천사 대웅보전 뒤편 병풍바위에 새겨진 석가여래입상.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마애불 중 하나다.
삼천사 대웅보전 뒤편 병풍바위에 새겨진 석가여래입상.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마애불 중 하나다.

우아한 빛으로 몸 전체 감싼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고양시와 서울시가 경계를 이루는 창릉천 입석리에서 삼천사 입구 삼거리까진 불과 1km 남짓이다. 물론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북한산의 품속으로 좀 더 들어가야 삼천사가 나온다. 불교식 이름을 가진 의상능선의 연봉들을 먼 배경 삼아 석탑과 법당, 키 큰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산사 풍경이 방문자를 맞는다.

삼천사 마애여래입상은 대웅보전 뒤편, 산령각(山靈閣) 바로 옆 커다란 병풍바위에 높이 2.6m의 크기로 조각돼 있다. 고요하게 감은 눈, 살짝 다문 입술, 목덜미까지 길게 내려온 귀. 더없이 자애로운 표정의 얼굴을 이중의 광배가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이리 저리 방향과 시선을 달리하며 마애불의 모습을 눈에 담아본다. 부드러운 법의를 걸친 몸은 안정된 비례미가 느껴지고, 몸 전체를 우아한 신광(身光)이 감싸고 있다. 두 발은 화려한 연꽃 모양의 대좌를 딛고 있고, 머리 위에는 또 하나의 묵직한 바위가 지붕처럼 돌출해 자연스레 마애불을 보호하는 지붕 역할을 하고 있다. 천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섬세한 부조의 윤곽이 선명하고, 긴 세월이 남긴 화강암 특유의 얼룩마저도 살짝 붉은 기운이 돌아 생동감을 더한다.

바위에 작은 돌멩이 얹으며 소원 빌어

이제 산길을 넘어 승가봉 아래 앉아계신 바위부처님을 만나러 가자. 삼천사에서 사모바위까지는 약 2km, 계곡길과 완만한 비탈길을 차례로 오르는 코스다. 오늘의 테마가 마애불인 까닭일까. 계곡을 따라 널린 다양한 형상의 화강암 바위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삼천사계곡이 시작되자마자 마주친 한 선바위(立石)는 앞쪽이 바가지처럼 우묵하게 패였는데, 그 위에 작은 돌들이 가득 얹혀있다. 커다란 바위에 작은 돌을 문지르거나 붙이며 소원을 비는, 전형적인 붙임바위의 흔적이다. 붙임바위는 그 형상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자손 얻기를 기원하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삼천사계곡 산길에서 만난 붙임바위 선돌(立石).
삼천사계곡 산길에서 만난 붙임바위 선돌(立石).

붙임바위를 지나고 나서도 크기와 형상이 유별난 바위마다 작은 돌멩이탑들이 정성껏 쌓아 올려진 광경을 여러 차례 만난다. 계곡 위쪽, 하얗게 언 작은 폭포 곁을 지키는 삼단 바위도 시루떡에 고명을 얹듯 층층마다 작은 자갈들이 덮여있다. 크고 영원한 바위와 합일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는 뭇 사람들의 소박한 심성이 전해온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자연의 신전, 사모바위

길게 이어진 오르막에 숨이 가빠질 즈음, 드디어 시야를 가로막던 언덕이 사라지고 하늘이 환하게 열린다. 비봉능선에 올라 숨을 고르고 있자니, 코앞에서 사모바위의 웅장한 위용이 환영 인사를 건넨다. 삼천사 입상을 알현하고 승가사 좌상을 뵈러 가는 길목에서 사모바위를 경유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최상의 배치가 아닐 수 없다. 사모바위야말로 북한산에서 으뜸가는 바위신앙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선사시대부터 바위신앙의 신전 역할을 해온 사모바위.
선사시대부터 바위신앙의 신전 역할을 해온 사모바위.

선사시대부터 이 산을 오르던 이들은 왜 사모바위를 가장 신성한 자연의 신전, 산신의 제단으로 삼았던 것일까. 그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목도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크기와 형상이 압도적인 것은 물론, 바위가 들어앉은 위치도 완벽하기 때문이다. 동쪽으로는 문수봉, 서쪽으로는 비봉이 호위하는 비봉능선 한가운데 우뚝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뒤로는 북한산의 영봉들을, 앞으로는 한강과 서울의 시원한 시티뷰를 조망하고 있다. 물론 북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가까이 지축동에서 멀리 덕이동까지, 고양시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화강암 바위가 떠받치고 있는 승가사

사모바위에서 승가사까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승가봉을 병풍으로 두른 승가사는 신라 경덕왕 시절(756)에 창건한, 1300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古刹)인데 절 구석구석이 화강암 전시장이다. 거대한 바위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는 절 입구를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면 청운교, 백운교라는 이름이 붙은 길고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이 끝나면 거대한 10층 석탑이 자리한 너른 마당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다시 한참을 올라야 본전(本殿)이 나온다. 가파르게 경사진 사면에 여러 단의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사찰을 지었는데, 석축 중간 중간 집채만한 바윗돌이 박혀있어 마치 화강암 바위들이 절집을 굄돌처럼 떠받들고 있는 모양새다.

승가봉 아래 비탈 위에 세워진 고찰 승가사. 석축 중간중간 집채만한 바윗돌이 박혀있다.
승가봉 아래 비탈 위에 세워진 고찰 승가사. 석축 중간중간 집채만한 바윗돌이 박혀있다.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려면 대웅전 뒤편 약사전(藥師殿) 옆으로 난 돌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 약사전 또한 커다란 화강암 바위 석굴에 지어졌다. 약사전 안에는 천년 전에 만들어진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보물 1000)’이 모셔져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화강암과 인연이 참 많은 절이 아닐 수 없다.

약사전을 지나 연화교, 쌍룡교라 이름 붙여진 108개 돌계단을 오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평행으로 상승하는 돌계단의 소실점에 마애여래좌상이 장엄한 모습으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 수직 동선의 끝에서 마애불을 알현하는 배치 자체가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높은 곳에 우뚝 솟은 암봉을 향해 한 계단 한 계단 길을 내고, 정과 망치로 돌조각을 떼어내 바위 속에 숨어있던 부처의 모습을 드러낸, 천 년 전 고려 석공들의 마음과 숨결을 상상해본다.

고요하면서도 장엄한 기운을 품은 승가사 마애석가여래좌상.
고요하면서도 장엄한 기운을 품은 승가사 마애석가여래좌상.

서울과 한강 굽어보는 천년의 가부좌

승가사 마애불은 삼천사 마애불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삼천사 마애불이 다분히 회화적이라면, 승가사 마애불은 상대적으로 입체성이 두드러진다. 우뚝하고 당당한 부피감을 드러낸 상체와 안정된 자세로 가부좌를 튼 하체가 나무랄 데 없는 조화를 이룬다. 5m에 이르는 압도적인 크기와 중후하고 또렷한 이목구비, 옷깃의 부드러운 질감까지 표현한 유려한 조각솜씨, 7장의 연꽃무늬가 화사하게 떠받지는 좌대. 우리나라 불교문화재 중 최고의 외모를 뽑는다면 석굴암 본존 석가여래좌상, 또는 보원사지 출토 철불좌상과 함께 으뜸을 다툴 만하다.

길고 가파른 계단 끝에 천년 가부좌를 튼 석가여래상이 자리하고 있다.
길고 가파른 계단 끝에 천년 가부좌를 튼 석가여래상이 자리하고 있다.

오후가 되니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이 바위부처님의 실루엣을 더더욱 선명히 그려낸다. 이처럼 거대하고 정교한 솜씨의 마애불을 조성하려면 아마도 국가나 왕실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있지 않았을까.

마애불은 서울의 남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마애불이 응시하는 정방향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서울 강남 롯데월드타워가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옛 석공들의 신심이 깊어 천년 후 100층이 넘는 서울의 랜드마크가 들어설 곳을 미리 예고한 것일까. 아니면 마애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살펴 초고층 건물의 위치를 낙점한 것일까. 신기한 마음에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마애불의 매력 감상하려면 햇살·시간 잘 살펴야

마애불 답사의 가장 중요한 팁을 꼽자면, 날씨와 시간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하늘이 투명한 날, 그리고 햇살의 그림자가 가장 도드라지는 시간을 살펴야 양각과 음각, 그리고 화강암의 질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느 시간이 최적인지는 정답이 없다. 마애불이 향하는 방향과 조각의 심도, 그리고 계절에 따라 골든아워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애불은 사람의 손길로 만든 인공 조형물이지만, 감상 체험을 완성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연이기에 감상자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참천사 산령각 옆 석가여래입상이 새겨진 병풍바위. 거대한 커다란 덮개바위가 마애불을 보호하고 있다.
참천사 산령각 옆 석가여래입상이 새겨진 병풍바위. 거대한 커다란 덮개바위가 마애불을 보호하고 있다.

북한산에는 승가사와 삼천사의 마애불 외에도 옥천암 마애좌상, 도선사 마애불입상. 상운사 서편 마애좌상, 용덕사 마애입상, 백운암 마애좌상, 백화사 마애삼존불입상, 원동사지 마애불 등의 마애불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위치도, 크기도, 형상도, 제작 시기도 각기 다른 이들 10여 개의 북한산 마애불 하나하나에는 경이로운 자연, 그리고 선조들의 자취가 함께 깃들어있어 찾는 이에게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예술적 감동을 전한다.

갔던 길을 그대로 되밟아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길, 어느새 겨울산의 해는 봉우리 너머로 기울었다. 삼천사 대웅보전의 낭랑한 풍경소리가 먼 옛날 북한산의 화강암 바위를 다듬던 석공들의 망치소리인양 아득히 귓전을 스친다.

참고문헌 : 성과 왕국(조현민, 주류성), 북한산성 연구 논문집(경기문화재단), 한국의 마애불(최복일, 달아실), 우리마을 고양의 문화재 이야기(고양문화원, 고양학연구소)

승가사의 또 하나의 보물인 석조승가대사좌상.
승가사의 또 하나의 보물인 석조승가대사좌상.
승가사 근처의 거대한 눈썹바위.
승가사 근처의 거대한 눈썹바위.
비봉능선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만난 삼단 시루바위.
비봉능선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만난 삼단 시루바위.
승가사 입구를 알리는 바위 이정표.
승가사 입구를 알리는 바위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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