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신기한 막걸리 인문학’
온라인으로 열린 대한민국 막걸리축제   
명욱 주류 칼럼니스트 초청 특강 
흥미진진한 막걸리의 가치와 매력 소개 

19일과 20일 양일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19회 대한민국 막걸리축제에서는 메인 프로그램인 팔도막걸리 전시회와 함께 전통주 빚기, 막걸리 소믈리에 시연 등 막걸리의 가치와 문화를 새롭게 짚어보는 다채로운 순서가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알고 보면 신기한 막걸리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우리술 인문학 특강이 알차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주목을 받았다.  
강의를 진행한 명욱 주류 칼럼니스트(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는 전국 각지의 전통주를 두루 섭렵한 경험을 토대로 활발한 저술과 방송활동을 이어오는 인기 강사다. 그는 막걸리를 비롯해 다양한 주류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자신만의 콘텐츠로 가다듬어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 등의 저서에 담아내기도 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제19회 대한민국 막걸리축제에서 강연을 한 명욱 주류 칼럼니스트.
 제19회 대한민국 막걸리축제에서 강연을 한 명욱 주류 칼럼니스트.

새로운 가능성 열어가는 전통주

과거와 달리 최근 소비자들은 ‘가치 소비’를 중요하게 여긴다. ‘저렴하게 많이’에서 ‘소량이라도 고급스럽게’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발맞춰 막걸리 역시 가격이 높은 프리미엄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주 구독서비스로 연 매출 50억원 대를 달성한 전통주 브랜드도 나왔다. 

코로나로 인한 홈술 문화의 확산도 소비 경향을 바꾸고 있다. 와인과 맥주 바틀숍(주류전문매장)에 이어 전통주 바틀숍도 늘고 있으며, 유일하게 인터넷 구매가 가능한 주류인 전통주 전문 쇼핑몰도 생겼다. 대기업이 작은 전통주 양조장과 협업해 콜라보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또한 전통주 산업은 국산 농산물, 지역 농산물 소비와도 연결된다.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 시장이 창업과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이다.   

맛과 향을 음미했던 음주문화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시원하게 들이키는 술이지, 와인처럼 음미하는 술이 아니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막걸리의 색과 향을 음미하는 오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몇몇 전통주의 이름들을 살펴보자. 석탄주(惜呑酒)는 향이 너무 좋아 넘기는 게 아쉬운 술이라는 뜻이고, 벽향주(碧香酒)는 푸른 파도 같은 향이 내 미각을 치는 술이라는 뜻이다. 또한 배꽃처럼 흰 느낌의 이화주(梨花酒), 닭이 울기 전에 완성해서 마시는 계명주(鷄鳴酒)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술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음주문화는 이런 낭만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많이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것으로 단순화됐다. 이제는 술을 다양하고 여유있게 즐기는 문화를 되찾을때가 됐다.    

우리말에 남아있는 술자리 해학

우리 술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해학이다. 사실 잔을 부딪치고 원샷을 하는 건배는 서로의 잔에 독을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던 바이킹의 문화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건배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술잔을 따르는(酌) 행위에서 비롯된 다양한 단어들이 만들어졌다. 술자리를 청하는 수작(酬酌), 호리병 속 남은 술을 헤아리는 짐작(斟酌), 상대방에게 얼마나 따라줄지를 마음속으로 정하는 작정(酌定), 술자리 상황을 살피는 참작(參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우리만의 독특하고 해학적인 문화다. 

물 속에 불을 품은 귀한 음식 ‘술’

세상의 모든 술은 물과 당분이 함께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공기중의 효모가 들어가면 당이 알콜로 바뀐다. 당이 알콜로 바뀔 때 탄산을 함께 배출하는데, 기포가 올라오는 모양을 ‘술이 끓는다’고 표현한다. 액체 안에 불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 한글학자는 물(水)과 불(火)이 더해진 ‘수불’이 ‘술’이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육당 최남선은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수라, 일본의 시루, 헝가리 고대어 세루, 그리고 우리 술이 모두 발효음식을 뜻하는 하나의 어원에서 나온 말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술은 곡식과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수고가 더해지는 너무도 귀한 것이라 절대로 남겨선 안 되는 음식이었다. 당연히 그 귀한 것을 제사에 사용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제례에는 막걸리, 동동주, 청주를 순서대로 올린다. 막걸리가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는 모든 술의 모체가 바로 막걸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막걸리축제 '팔도막걸리 전시회'에 출품된 막걸리들. 
대한민국 막걸리축제 '팔도막걸리 전시회'에 출품된 막걸리들. 

동네마다 서로 다른 맛과 향

막걸리의 ‘막’은 ‘마구 거칠게’와 ‘이제 막’이라는 뜻을 함께 갖는다. 따라서 막걸리를 ‘서민의 술’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우리 민족만이 마시는, 세계에서 가장 신선한 술’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일본을 대표하는 술인 사케는 주원료와 누룩을 오로지 쌀로만 만든다. 그에 반해 우리술 막걸리의 누룩은 밀로 만들고, 주원료도 쌀, 밀, 조, 감자, 옥수수, 고구마 등 다양하게 사용한다. 또한 고두밥 뿐 아니라 떡이나 죽으로도 술을 빚었다. 따라서 막걸리는 지역마다 동네마다 술맛이 다 달랐다. 그만큼 발상이 자유롭고 응용력이 뛰어난 것이 막걸리의 커다란 매력이었다. 이렇게 나만의 맛을 만들고, 서로 다른 것을 권하던 문화가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와 압축성장기를 거치며 사라졌다가, 최근 들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술과 어울리는 음식의 궁합

막걸리는 항암성분이 와인보다 25배나 높고, 식이섬유도 풍부해 변비나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술은 기본적으로 기능성을 기대하기보다는, 적당한 양을 맛과 향으로 즐겨야 한다. 

술과 음식에는 궁합이 있다. 막걸리가 파전하고 어울리는 이유는, 막걸리 속 누룩이 파전의 전분을 분해해서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삼겹살과 소주가 어울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삼겹살의 기름이 소주의 알콜에 분해되기 때문에, 입안을 개운하게 가셔주고 깔끔하게 넘겨준다.이렇듯 음식과 술의 조화를 감안하고 먹으면 술자리에서 삶의 질이 높아진다.

전통주의 새로운 변신 '막걸리 칵테일'. 
전통주의 새로운 변신 '막걸리 칵테일'. 

지방에 가면 그 지역 전통주를

우리나라에는 전국 곳곳에 1500~2000종류의 막걸리가 있다. 여행길에서 맛있는 남도 음식을 먹으며 대기업에서 생산한 소주와 맥주를 마시는 것은, 음식의 천국인 프랑스 파리에 가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것과 똑같다. 이왕이면 그 지역의 막걸리와 그 지역의 전통주를 찾아 마시면, 그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새로운 막걸리를 만날 때면 라벨을 꼼꼼하게 읽어보자. 재료와 생산지, 살균여부와 알콜도수 등 다양한 정보를 분석하는 감각을 키워야 전통주가 선사하는 다양성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맛이 계속 변하는 술, 막걸리

막걸리는 시간에 따라 맛이 계속 변하는 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출시된지 2일에서 5일 사이의 막걸리가 맛있다고 말하는데,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제 막 출하된 막걸리들은 당이 아직 덜 분해돼 맛이 달고, 탄산과 신맛은 적다. 이런 맛은 식전주로 잘 어울린다. 반면 신맛과 탄산이 짙어진 막걸리는 맛이 진한 음식과 매칭이 잘 된다. 막걸리 맛을 다양하게 즐기려면 첫 잔을 음미하며 숙성 정도를 파악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우리 땅 역사·문화 만나는 전통주

전국 각지의 특색 있는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것도 좋은 여행의 테마가 된다. 포천 산사원 느린마을양조장에는 500개의 항아리에서 술이 익어가는 향기가 그윽하게 감돈다. 용인 술샘양조장은 붉은 누룩으로 만든 막걸리를 비롯해 다양한 전통주를 만날 수 있다. 평택 밝은세상 영농조합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에선 살짝 배맛이 감돈다. 당진 신평양조장에서 만드는, 연꽃을 이용한 백련막걸리는 불교 곡차문화를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남 해창주조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가의 막걸리를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전통 막걸리는 술을 만드는 이의 생각과 배경, 환경이 반영된 술이다. 이게 한국 전통주의 매력이다. 이제는 마시고 취하는 것으로 끝나는 음주문화 대신, 우리 막걸리와 전통주를 통해 이땅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 농산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가치를 음미해보자.  

※ 막걸리 인문학 특강 영상은 유튜브 ‘고양신문 고양팟’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