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기자의 공감공간] 파주 탄현면 ‘박명선 갤러리’

마당 앞 너른 들녘, 공릉천과 장릉 가까이에
구석구석 미술작품… 아기자기 정원과 텃밭
다양한 아트 프로그램 즐기는 갤러리 스테이
“예술로 소통하며 힐링하는 공간 가꾸고파”  

[고양신문]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공릉천이 마주 보이는 시골 마을에 눈에 띄는 단독주택이 있다. 박명선 화가가 운영하는 갤러리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위치를 설명하는 이정표가 곳곳에 있어 찾기 쉽다. 갤러리와 작업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집 마당에는 ‘멍때리는 의자’와 ‘쉬는 의자’ 두 개가 대문 대신에 놓여 있다. 

건물 벽에 크고 작은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있고, 마당에는 진짜 꽃과 가짜 꽃이 공존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원색 작품들이 감각적이다. 이곳은 갤러리이고 복합예술공간이고, ‘누가 봐도 화가네 집’이다. 갤러리에서는 숙박이 가능하다. 독채를 빌려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데,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방은 3개다. ‘평화’ 방에는 임진강 그림이, ‘달그림’ 방에는 달 그림이, ‘쉬는 나무’ 방에는 나무 그림이 각각 걸려있다. 

박명선 갤러리 '달그림' 방.
박명선 갤러리 '달그림' 방.

마당에서 만난 박명선 작가는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을 논에 모를 심은 지 얼마 안 되는데요. 시간이 갈수록 모습이 달라져요. 벼가 파랗게 자란 8월 말쯤이 가장 인상적이지요. 바람이 불면 초록색 파도가 춤을 추는 것 같아요.” 

60대 중반인 박 작가는 40대에 영국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림만 하다 보니 어느 날 ‘그림을 못하고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얘기를 했어요. 결국 여행 비자로 영국에 갔다가 제가 예비학교에 입학해버린 거예요. 학교를 들어가는 것은 소설 한 권이 나올 정도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어요.” 

자연친화적 공간을 가꿔나가고 있는 박명선 화가. 
자연친화적 공간을 가꿔나가고 있는 박명선 화가. 

결국 박 작가는 영국에서 대학과 대학원까지 마쳤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해야 하는 일상이 힘들었지만, 좋아하던 미술을 치열하게 했지요. 성공해서 유명해지기보다는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귀국 후에는 이곳 파주에 200평 정도 되는 땅을 사서 살림집과 작업실을 지었다. 자급자족률을 높이기 위해 텃밭 농사를 짓고 기술을 배웠다. 바느질을 배워 옷을 만들고, 생활 기술을 배워 난로를 직접 만들었다. 갤러리 거실 안쪽에 그 난로가 있다.

“난로를 사러 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직접 만들었어요. 마침 영국에서 돌아오면서 조각 입체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불을 피울 때는 난로이지만, 평소에는 인테리어 소품이지요.” 

공간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미술작품들. 왼쪽에 박명선 작가가 직접 만든 난로도 보인다.
공간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미술작품들. 왼쪽에 박명선 작가가 직접 만든 난로도 보인다.

박명선 작가는 2019년에 ‘주부 그림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열며 일반인에게 갤러리를 처음 개방했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그림 수업을 하고, 그림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눴다. 수다는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2020년에는 박명선갤러리를 정식으로 오픈했다. 그리고 아트 프로그램을 몇 차례 진행했다. 

“아트 프로그램 과정에는 아트 스테이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1박을 하면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면 깊이가 다르잖아요. 달밤의 대화와 산책은 자기 내부에 담고 있던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게 하지요. 누군가 ‘맞아,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라고 얘기해 주면 그 자체로 힐링이 되고요.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고 예술을 매개 삼아 내 속에 있는 다양한 욕구를 해소하기도 합니다. 평소 못하던 것을 퍼포먼스로 해보기도 하고요.” 

갤러리 방문객들의 작품으로 꾸민 야외 테라스.
갤러리 방문객들의 작품으로 꾸민 야외 테라스.

퍼포먼스에는 큰 꽃을 머리에 꽂고 주변 돌아다니기, 헤이리에 가서 음악 공연하기, 분장을 하고 무용하기가 있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용기를 내어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거실 한쪽 벽면에는 박 작가의 대표작 ‘흔들리는 책’이라는 그림이 진열돼 있다. 인문학과 예술을 접목한 작품이다.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책장에 그대로 박제되어 있잖아요. 필요한 사람들한테 흘러가면 좋겠다는 의미로 책 제목과 이산가족의 사연을 담았어요.” 

그림뿐만이 아니라 책도 많다. 남편의 손때가 묻은 철학 책으로 ‘철학 테이블’이라는 설치 작품을 제작했다. 이 테이블은 식탁으로, 그림 그리는 테이블로, 아낙들의 수다 상으로 쓰인다. 이불과 베개는 자신의 그림을 프린트해서 직접 만들었다. 최근에는 낡은 양은 냄비를 활용해 조명작품도 만들었다. 마당 안쪽에는 해먹이 있고,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캠핑장도 마련돼 있다.

거실에 놓인 '철학테이블'도 하나의 작품이다.
거실에 놓인 '철학테이블'도 하나의 작품이다.

박 작가는 현재 예술을 통해서 공릉천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공릉천 주변에 커다란 나무들이 많았어요. 최근에 공사를 하면서 그걸 다 잘라버려서 안타깝더라고요. 거기서 나무를 주워와서 공릉천을 기록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무 막대기에는 공릉천에 사는 새, 오리, 고라니를 그려서 주차장에 ‘책나무 설치미술’을 전시해 놨다. 작품들은 SNS에 꾸준히 올리고 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전시를 줄였어요. 앞으로 무얼 하며 살까를 고민하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공간을 오픈하게 되었는데요. 이곳이 저한테는 마지막 캔버스와 같아요. 펜션을 병행하면서 갤러리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도모하고 싶어요. 앞으로 이곳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예술, 문화, 힐링, 자연 친화적인 삶을 생각하는 갤러리로 남고 싶어요.”

박명선 갤러리 건물.
박명선 갤러리 건물.

동네 사랑방 같은 이곳에서는 삶이 생활 예술로 승화되는 곳이다. 바로 근처에는 갈대숲이 무성한 공릉천 하구와 조선 인조임금의 능인 파주 장릉이 있어 하루 여행지로도 좋다. 커피는 갤러리 주방에 있는 커피 머신에서 직접 뽑아 마시면 된다. 맛과 향이 좋은 예가체프 원두를 준비해 두고 있다. 주말에는 스테이 손님이 있으니, 방문 전에 미리 전화를 하는 것이 좋다.  

주소 :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682-43
문의 : 010-9968-5878

가짜꽃과 진짜꽃이 섞여있는 정원 화단. 
가짜꽃과 진짜꽃이 섞여있는 정원 화단. 
거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명은 '흔들리는 책'이다. 
거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명은 '흔들리는 책'이다. 
마당의 나무 사이에 설치한 해먹.
마당의 나무 사이에 설치한 해먹.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별채.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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