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그라시재라』로 노작문학상 수상

열 살 때 들은 할머니들 말
시인이 기억으로 재구성 
진득한 전라도 방언 되살려
깊은 비극·넓은 희극 다 담겨   

[고양신문] 60년대 할머니들이 주고받은 이야기가 시가 됐다. 그것도 진득한 전라도 방언을 그대로 옮겨놓았는데, 바로 이점이 놀랍게도 풍성한 감성을 일깨운다. 

조정 시인이 열 살 무렵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 친할머니가 주변 할머니들과 나눈 이야기를 서사시로 엮어 『그라시재라』라는 시집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로 이뤄진 이 ‘기이한’ 시집으로 지난 16일 제22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작문학상은 일제강점기에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민족적 작품을 남긴 노작(露雀) 홍사용 시인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됐다. 홍사용 시인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 문화계 인사들이 주도해 설립한 ‘노작문학상운영위원회’가 주관하고 화성시가 후원한다. 현재 화성시 문화계 인사들은 화성문화재단에 위탁하는 형태로 홍사용문학관(관장 손택수)도 운영하고 있다. 노작문학상을 받은 이들을 보면 탁월한 시인들의 이름이 줄줄이 이어진다. 1회 수상자인 안도현부터 문인수, 문태준, 김소연, 심보선, 손택수, 장옥관 등이 노작문학상을 받았다.

『그라시재라』에 담긴 내용은 대부분은 기억의 산물이다.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겪은 1960년대 나이든 여성들의 이야기를 시인이 기억해내 써내려갔다. 6·25전쟁을 겪고 양민학살을 목도하고 그 가운데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던, 그래서 그 비극을 누구에게라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런가하면 죽음을 맞이한 동학군과 연관된 여성의 이야기도 스며있고, 저마다 독특한 성격과 사연을 가진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도 녹아있다. 시집을 읽다보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서효인 시인은 ‘죽음보다 깊은 비극을 겪고 삶보다 넓은 희극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무미건조한 문체로 옮긴 글들은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그런 만큼 우리는 은연중에 무미건조하게 반응한다. 방언이 자아내는 감성의 풍성함을 현실에서는 표준어로 가두어버린다. 조정 시인은 이를 “고운 여성의 몸을 강철 코르셋으로 조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표준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방언이 가지는 풍부한 뉘앙스에 닿지 못한다는 걸 『그라시재라』라는 시집은 증명해 내고 있다.

다음은10월 1일 경기도 화성 노작홍사용문확관에서 열릴 수상식에 참가할 조정 시인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조정 시인은 『그라시재라』라는 시집에 대해 ‘1960년대 시골 마을 집집에는 농로에 물 흐르듯 무명옷차림의 이야기가 흘렀다.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지금껏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중심으로 글을 꿰었다’라고 했다.
조정 시인은 『그라시재라』라는 시집에 대해 ‘1960년대 시골 마을 집집에는 농로에 물 흐르듯 무명옷차림의 이야기가 흘렀다.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지금껏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중심으로 글을 꿰었다’라고 했다.

▍시인이 10살 때 기억을 되살려 쓴 시라고 보면 되나. 
되도록 기억을 살려서 쓰려고 했다. 오고간 대화가 기억이 안 나고 모티프만 남은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 서사시를 쓸 때 기억나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했음직하다는 감각에 휩싸였던 것 같다. 마치 신접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완전한 채록이라고 할 수도 없고, 완전한 픽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서사시다. 

▍이 시집의 화자를 여성으로 내세운 특별한 이유는.
전남 영암에서 어릴 적 저희 할머니 주위의 다른 할머니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티브로 시를 써내려갔다. 60년대 할머니들의 말 속에서 페미니즘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내고 싶었다. 페미니즘이 서구에서 갑자기 들어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여성들의 자의식이 작동할 수밖에 없었고 페미니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시집을 읽다보면 마치 전라도 여성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시집이라는 평도 있던데, 시집 전편에 담을 만큼 서남 방언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집을 읽으면 저절로 음성 지원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보통 책에서 방언이 나오면 이 뜻에 가장 근접한 표준어로 부연 설명한다. 나도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을 쓰면서 표준어로 따로 설명할까라는 유혹을 받았다. 시집 속 여성들의 대화가 훨씬 선명하고 쉽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남 전라도 방언이 표준어의 도움을 받아야만 소통이 되는 방식에는 어떤 답답함이 있다. 이것은 마치 여성의 몸을 강철 코르셋으로 조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외국어는 ‘외래어’라는 말로 표준어에 편입된다. 그런데 방언은 우리말로 편입되면 안 되는 말인양 여겨지고 있다. 외래어는 당당하게 사용되기도 하고 지식을 뽐내느라고 은연중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방언을 사용하면 생뚱맞게 사용한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러한 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라도든 경상도든 방언은 버리지 않아야 한다.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어와 동급으로 방언의 용처가 사람들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전라도 방언, 특히 이 책의 배경이 된 영암 방언이 주는 의미는.  
지금은 인구소멸 지역으로 꼽을 만큼 낙후된 지역이 됐지만 영암은 고대 마한의 무역도시였다. 고대문화에서 하이테크놀로지의 정점이라고 하는 도기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곳도 영암이다. 영암은 또한 월출산 앞에 안개가 몇 자락이 지나갈 때의 고유한 아름다움도 간직한 곳이자 예술적 정취도 짙은 곳이다. 그런데 영암에서 전해 내려오는 노래가 없다는 것은 도무지 이상하면서도 또한 아쉽다. 여기에는 신라 지배에 따른 압제가 작용했을 것이다. 아마 노래가 남아있었다면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다. ‘고대 전라도 지역에서 어떤 말을 사용해서 노래를 만들었을까’라는 궁금함이 늘 있었다.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전라도 말의 결을 살펴본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주위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틈틈이 시 쓰는데 좀 더 에너지를 쏟길 원하는 목소리도 있지 않나. 
시인이 산황상 사태에 부딪히면서 어떻게 시를 쓰지 않을 수 있겠나. 산황산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과 느낌들도 시로 표출된다. 그래서 고발성 시를 여러 편 써왔다. 산황산 싸움과 관련한 시들만을 따로 묶어 시집을 낼 계획이다.  

 ▍『그라시재라』는 2007년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을 낸 이후 15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이다. 『그라시재라』라는 시집이 갖는 의미는. 
제가 등단할 무렵 고형렬 시인으로부터 ‘고향으로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은 시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이 내게 계속 숙제를 안겼다. 그리고 제가 첫 시집을 냈을 때 저의 부모님이 제 시집을 보고 ‘우리가 이해하기는 어렵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이 내게는 빚이 됐다. 

당신들이 무식해서 이해를 못하는 것쯤으로 여기게 하는, 그래서 당신들에게 열패감만 주는 시들만 쓰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도 했다. 이제 『그라시재라』를 내놓았으니 이제 숙제를 했고 빚을 갚았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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