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변경 시 소송 휘말릴 것”
지체배상금 한 달에 2400만원
중단시켰던 설계용역 9월 재개
신청사 축소계획 실현될지 의문

[고양신문] 이동환 시장의 지시로 중단됐던 신청사 설계용역(기본 및 실시설계)이 다시 재개된 것으로 확인됐다. 설계비 107억원의 해당 용역은 올해 3월 30일 시작됐지만 시장 취임식이 있고 3일 뒤인 7월 4일 이 시장의 지시로 곧바로 멈춰섰다. 용역을 시작하면서 이미 설계비의 50%인 53억원을 설계업체에 선지급했기 때문에 당시 용역 중단에 대한 논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용역은 중단 2개월 만인 9월 2일 다시 재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유는 계약 이행을 지체할 경우 물어야 하는 배상금인 ‘지체상금’ 때문이다. 

법적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 이행을 지체한 계약자는 지체상금을 내야 하고 이번 계약의 경우 일시 정지할 수 있는 최대 기한은 60일이었다. 60일을 넘기면 매일 약 80만원의 지체상금을 고양시가 지불해야 한다. 한 달이면 2400만원의 적지 않은 돈이다. 고양시는 60일을 모두 채우고 용역을 재개했기 때문에 앞으로 하루라도 용역을 중단시킨다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한다.

지난해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고양시 신청사 조감도. 하지만 이동환 시장의 추천으로 구성된 ‘신청사 재검토 TF’가 규모를 4분의 1로 축소해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설계용역을 무력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고양시 신청사 조감도. 하지만 이동환 시장의 추천으로 구성된 ‘신청사 재검토 TF’가 규모를 4분의 1로 축소해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설계용역을 무력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설계용역은 내년 5월에 끝나지만 최근 2개월간 중단되면서 용역 최종 준공일도 내년 7월로 미뤄졌다. 고양시는 설계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지금으로선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양시장직 인수위원(경제2분과 간사)이었던 이정형 중앙대 교수를 중심으로 외부 전문가 6인이 ‘신청사 재검토 TF’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TF가 기존에 계획된 설계안을 전면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07억원짜리 슈퍼용역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해당 용역은 고양시가 국제공모를 통해 1등 당선작을 낸 업체에게 설계를 맡기는 것으로 진행됐다. 설계비 107억원은 국제공모 1등에게 상금 성격으로 부여된다. 설계업체는 행안부 심사를 통해 확정된 신청사 건축규모인 연면적 7만4000㎡(약 2만2000평)를 기준으로 현재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데, 설계가 재개(9월 2일)되고 2주 뒤인 이달 14일 고양시 신청사 재검토 TF는 연면적 5000평으로 축소해 짓겠다는 대안을 갑자기 내놓았다.

이렇게 실제 설계진행과 고양시의 제안이 각각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두고 담당 공무원들도 무척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설계를 멈추기도, 방향을 바꾸기도 어려운 현재의 상황을 무시한 채 소수의 외부 전문가들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계획을 전면 수정하려는 시도가 과연 먹힐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신청사 연면적을 4분의 1로 축소해 짓겠다(공사비는 5분의 1로 축소)는 TF의 이번 제안은 포럼(토론회) 형식을 빌려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참석자들을 향한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실제로 신청사를 추진하고 있는 담당 부서 공무원조차도 TF위원장이 발표한 발제문의 핵심 내용을 포럼 일주일 전에야 받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TF의 이번 제안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는 행정절차를 담당하는 시 공무원들도 정확히 검토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14일 고양시청 문예회관에서 열린 시청사 재검토 포럼.
14일 고양시청 문예회관에서 열린 시청사 재검토 포럼.

포럼이 끝난 다음날인 15일 한 공무원은 “두 달 간 5번의 TF회의가 있었는데 매번 다른 안이 제시됐고 그때마다 행정절차상의 문제점들을 알려드려야 했다. 그런데 이번 발표안은 우리도 지난주에야 받아봤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에 대해 깊이 있게 따져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해당부서가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는 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용역을 무력화했을 때 발생하는 매몰비용이다. 설계용역비는 건축물 공사비에 준해 책정되는데, TF 방안대로라면 계약규모의 5분의 1로 설계비가 낮춰질 수밖에 없어 설계업체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국제공모 당선작의 개념을 바탕으로 설계한다는 계약도 위반하게 된다. 이미 53억원이 선지급된 것도 큰 부담이다.

담당 공무원은 “TF위원장이 발표한 내용이 현재 설계안의 일부 건물만 만든다는 것인지, 아니면 설계를 완전히 다시 해서 만든다는 것인지 부서에 정확히 전달된 바는 아직까지 없다”고 답했다. 즉 포럼 현장에서 참석자들이 비판했던 ‘제안 내용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라는 인식을 담당 공무원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TF를 교수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그들이 실무 행정에 대해 간과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홍열 시의원은 “국제공모로 이미 당선된 작품의 기본 설계개념을 바꿀 경우 각종 소송에 휘말릴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되면 담당 공무원들도 공직생활에서 치명타를 입게 된다”며 “이동환 시장의 억지 주장으로 인해 시간과 돈이 낭비되는 것은 물론이고 공직자들까지 소송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 의원은 “이동환 시장의 지시로 TF가 구성됐는데, 이런 TF의 행태에 대해 시민들도 답답한 마음이 들겠지만, 가장 답답한 사람들은 해당 부서 공무원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1월 조직개편과 정기인사와 승진을 앞둔 시점에서 시장 눈치도 봐야하고, TF 비위도 맞춰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무엇보다 자신들이 수년간 진행해온 행정절차를 스스로 뒤엎어야 한다는 무력감, ‘지금까지의 절차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인사권자인 시장을 상대로 설명해야 하는 부담감 등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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