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다 어렵던 지난 6·70년대 시절, 밥을 굶는 아동들이 많았다.  어른들이 배를 곪을 판인데, 노동력 없고, 부모의 보살핌이 없는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특히 학교에서 배를 채우기는 힘든 일.  이 시절 점심시간이면 수돗가로 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이다.  당시 미군 원조품 중에서, 이런 아이들을 위해 보급되는 우유가 있었다.  찌면 딱딱하니 과자처럼 되는 그 것을 받아먹고 변소를 들락거렸다.  기름기 없는 뱃속에서 그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랄 것이 없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이런 아이들에게 붙여지는 호칭도 딱히 없었다.  지금은 그런 아이들을 결식아동이라 부른다.  전국적으로 초.중.고교를 포함해 30만5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통계이고, 실상은 이보다 훨씬 많다. 

한 시민단체에 따르면 114만 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들 결식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부실 도시락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참여복지’를 기치로 내건 현 정부 복지정책의 어두운 한 단면이다. 

그런 도시락을 받아먹고도 ‘잘 먹었습니다’라는 감사편지를 쓰고 있는 아이들의 상처 난 동심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복지정책은 무엇보다 생각과 실행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명분만 요란하고 실행이 안 따르면 그 것은 복지라고 할 수 없다. 

정책이 시행되는 말단현장까지 챙기고 또 챙겨도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 복지문제다.  문제는 피가 통하고 온기가 흐르는 마음이고 정성이다.  “나는 배부르다”며 싸온 도시락을 배 곪는 어린 제자들에게 주던 그 시절 우리 선생님들의 마음처럼 감싸고 보듬어줘야 한다. 

이런 와중에 고양시에서는 급식지원학생 전원에게 도시락 대신 농수산품상품권을 지급해왔다는 씁쓸한 뉴스가 나왔다. 각 가정까지 도시락 배달이 어려워, 상품권으로 주.부식류를 구해 먹으라는 것인데, 가히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배고픈 아이들이 도시락대신 그 상품권으로 인스턴트류의 먹거리들을 구하러 다니면서 받게 되는 몸과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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